경기 깜짝 회복은 ‘억지 회복’?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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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부양책 약효 떨어지자 소비-고용 등 줄줄이 악화
美 3분기 GDP 3.5% 성장 부양책 효과 빼면 ‘제로’
민간은 회복 더뎌 내핍 여전… 한국 재위축 우려 주가 급락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각국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경기부양책의 ‘약효’가 떨어지면서 세계 경제에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면 민간 부문의 회복이 필수적이지만 그 속도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미국 증시는 이 같은 불안심리의 여파로 2.5% 급락했고 2일 코스피도 5거래일 연속 추락하면서 1,559.09로 마감했다.

올해 초 각국 정부는 전례를 찾기 힘든 고강도 부양책으로 세계 경제를 붕괴 직전 상태에서 구해내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경기회복 조짐이 확연해지면서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출구전략(Exit Strategy) 논의도 본격화됐다. 하지만 일련의 부양책들이 점차 끝나가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허약한 체력이 차례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한국 미국 등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깜짝 실적’을 기록한 것도 사실은 막대한 재정지출에 크게 의지한 ‘표피적 회복’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 부양책 끝나자 경제지표 줄줄이 악화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9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은 전달보다 0.5% 줄어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소비지표가 갑자기 악화된 것은 연비가 좋은 새 차를 구입할 때 약 4500달러의 현금을 보상하는 ‘중고차 현금보상(Cash for clunkers)’ 제도가 8월 말로 종료된 영향이 컸다. 미국 내 9월 신규주택의 판매가 전달보다 3.6% 줄어든 것도 미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주택구입 세액공제가 곧 끝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5%를 두고도 마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경기부양책이 성장률을 3∼4%포인트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결국 부양책이 없었다면 제로 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냈을 것이란 뜻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의 피해를 덜 본 아시아 국가들도 점차 인위적 부양에 따른 ‘부메랑’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올해 4조 위안(약 680조 원)의 경기부양책을 집행 중인 중국 정부는 자산버블과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중국 경제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은 ‘스테로이드 투입에 따른 성장’으로 향후 경기침체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한국 경제도 ‘나 홀로 회복’ 어려워

표피 성장은 3분기 2.9%라는 깜짝 성장률을 발표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민간 부문의 고용사정은 아직도 추운 겨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9월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만 명이 늘었지만 이는 정부의 공공근로 사업에 따라 희망근로와 행정인턴 등 공공 부문에서만 32만6000명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제조업(-11만8000명), 도소매음식숙박업(-15만8000명) 등 민간 부문은 여전히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 같은 달 11% 증가한 광공업 생산도 신차 효과와 정부의 세제 지원 덕을 톡톡히 본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의 부양책이 시들해지면 한국 경제도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현대·기아차의 9월 미국 현지 판매량은 중고차 현금보상 제도가 끝나면서 전달보다 47%나 급감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상무는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쓰는 동안 자생적으로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던 민간 경제가 되살아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재정부담 때문에 부양책을 계속 쓰기도 어려운 만큼 세계 경제가 어느 정도 내핍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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