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관 선임’ 진보-보수 한판승부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민주 “지나친 우향우 바꿔야” vs 공화 “진보후보 판결-발언 집중 공략”

《2003년 미국 애리조나 주의 13세 여학생이던 사바나 레딩은 학교(사포드)에서 알몸수색을 당했다. 레딩이 교내 반입금지 약품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한 교사들이 수색 도중 속옷까지 모두 벗도록 시킨 것. “평생 못 잊을 수치심을 경험했다”며 레딩이 낸 소송에 학교 측은 “학생을 약물남용에서 보호하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맞섰다. ‘레딩 대 사포드’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게 될까. 미 대법원에는 대법관 9명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사건이 줄줄이 계류돼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사임한 데이비드 수터 연방대법관의 후임자를 놓고 벌써부터 보수와 진보진영의 신경전이 뜨겁다.》

수터 대법관 후임 공방… 진보성향 여성 유력

총기규제-동성애 등 과거 판례따라 결정 날듯

아킬레스건은 뭘까?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자 조건은 진보 성향의 여성 법조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잇단 보수인사 선임 이후 대법원이 지나치게 ‘우향우’ 추세를 보인 만큼 이번엔 진보적 인물을 앉혀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이다. 또 로스쿨의 50%, 법조 인력의 3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 한 명뿐인 여성 대법관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

하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파들은 20년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대법관 선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5개 보수적 법률단체로 구성된 사법활동그룹(JAG)은 진보 후보의 과거 판결과 발언을 분석하는 조사연구팀을 꾸렸다. 후보들의 문제점을 찾아내 인준 과정에서 집중 공격한다는 계획이다. 보수파들의 법률 네트워크인 JCN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낙태와 총기 규제, 동성애 등의 이슈에 불을 붙일 홍보전을 벌이기로 했다.

보수파가 겨냥하는 후보들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유력 후보인 소니아 소토메이어 제2연방항소법원 판사는 과거 ‘멀로니 대 쿠오모’ 사건에서 무기소지권을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로 총기 소유 지지자의 공격을 받고 있다. 다이앤 우드 제7연방항소법원 판사는 부분낙태에 찬성한 과거 판결과 저술 활동, 동성애자의 가입을 불허한 학생종교단체를 캠퍼스 내 공식 단체로 인정하지 않은 판결 등이 논쟁의 도마에 올랐다. 하버드 로스쿨 학장 출신인 엘레나 케이건은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학이 학생군사교육단(ROTC) 프로그램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솔로몬 조항’에 반대한 전력이 있다.

이 밖에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애리조나 주지사였던 지난해 부분낙태 반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캐슬린 설리번 스탠퍼드대 법대 교수는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킴 워드로 제9연방항소법원 판사는 사형제에 찬성하고 시청의 십계명 전시를 허용해 상대적 보수파로 분류된다.

희비 가를 판례들

보수와 진보의 최종 격돌 포인트는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주요 사건들이다. 이 중 ‘리치 대 디스테파노’ 사건은 소수인종 배려정책으로 인한 백인들의 역차별 문제가 걸린 소송이다. 뉴헤이번의 백인 소방대원 프랭크 리치와 동료들이 “승진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도 흑인을 고려해 시험을 무효화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투표권법 개정 여부도 논란이다. 과거 흑인 차별이 심했던 남부의 16개 주가 선거법을 바꿀 때 연방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조항의 유지 여부에 대법원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 노조나 기업의 자금을 연방 선거운동에 쓸 수 있는지 등의 정치적 사건도 걸려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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