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거주권, 美시민권 따기보다 어렵다?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관광일자리 노려 에콰도르 본토인 몰려와… 정부 “생태계 보호” 제한

불법 거주자 추방하자 원주민과 결혼도 늘어

“갈라파고스 거주권이 미국 시민권 따기보다 어렵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완성해 유명해진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요즘 주민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오간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에콰도르 정부가 2007년부터 엄격한 이주제한 정책을 실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에콰도르 땅인 갈라파고스에는 지난 몇 년간 에콰도르 이주민이 급증해 생태계가 위협받을 정도다. 급기야 정부가 원주민, 취업허가서를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국민이라 하더라도 추방령을 내리면서 원성을 사고 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25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불법거주자’로 분류돼 본토로 돌아간 사람은 1000명가량으로 대다수가 강제추방을 당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태평양에 고립된 이 작은 섬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관광업종을 중심으로 한 고임금 일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문자만 17만 명에 이르렀고 다윈 탄생 200주년인 올해엔 더 많은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에콰도르 북부에서 온 하이로 몬테네그로 씨의 경우 본토에서 호텔 관리인으로 일할 때는 월급이 120달러에 불과했지만 갈라파고스에서 크루즈 선원이 된 뒤엔 780달러로 6배 이상 올랐다. ‘동식물의 낙원’ 갈라파고스가 아니라 ‘돈의 낙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

이러다 보니 갈라파고스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산타크루스 섬의 중심도시인 푸에르토아요라의 경우 10년 전 1만여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만여 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관광객과 이주자가 늘면서 모기, 쥐 등 외래종도 함께 들어와 생태계가 파괴되고 환경오염도 심각해졌다는 것. 2007년 유네스코는 인구과밀, 관광산업, 불법어획 등을 문제 삼으며 갈라파고스를 ‘위기에 놓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비록 갈라파고스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가 거주권이 없을 경우 섬을 떠나도록 규제한다. 섬 곳곳엔 검문소가 들어섰고 경찰은 디스코텍 등을 찾아다니며 본토 출신 거주자를 색출하고 있을 정도다. 산지로 숨어들거나 원주민과 결혼해 거주권을 취득하려는 사람도 늘었다. 주민들은 속지주의를 적용하는 미국 시민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라며 항의 시위도 벌이고 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동식물보다 사람의 권리를 더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에드가르 무노스 소장은 “갈라파고스를 유리 안에 가두고 건드려서는 안 될 곳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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