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오바마 “AIG간부 거액 보너스 잔치 눈뜨고 못보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국민 여론 악화땐 구제금융 계획 차질 우려

AIG의 보너스 파문이 금융시스템 정상화에 전력을 쏟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거센 역풍이 되고 있다.

천문학적 국민 세금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회사가 간부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한 데 대한 국민적 분노가 정부의 구제금융정책 자체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난 대통령, 격노한 여론=오바마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AIG의 보너스 지급을 막기 위해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평소답지 않게 격앙된 감정이 실린 표현들이 쏟아졌다.

“AIG는 탐욕과 무분별함으로 인해 재정 파탄이 났다. 그런 회사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이 어떻게 1억6500만 달러의 추가 보수를 보장받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근본적인 가치에 관한 문제다”….

의회와 대중의 분노는 훨씬 드세다.

공화당의 찰스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그들(AIG 경영진)은 일본의 모델을 따라 사직하거나 자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너스 회수 촉구 성명서에 서명한 연방 하원의원은 80명을 넘어섰다.

AIG의 파생상품 거래 자회사인 AIG파이낸셜프로덕트 사옥 앞에는 무장 경호원이 배치됐고 사무실엔 항의 전화와 살해 위협 e메일이 쇄도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 검찰총장은 AIG에 보너스 수령 임직원 명단, 그들의 실적 세부사항과 사내 역할 등을 즉각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의 고민=정부의 만류에 아랑곳없이 AIG는 이미 지난 주말 1억6500만 달러의 보너스 지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지급한 보너스는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7일 보도했다. 이를 회수하려면 법적 싸움이 불가피한데 소송비용과 변호사 선임비로 보너스보다 많은 세금이 들기 때문이다.

보너스 회수를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압박 수단으로는 검찰 수사와 더불어 1730억 달러의 AIG 구제금융 가운데 미지급분인 300억 달러 지원을 미룰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AIG 경영이 계속 파행을 겪거나 회생이 늦어질수록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대통령이 여론의 물결에 여과 없이 동참한 것은 결국 부메랑이 돼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앞으로도 금융기관 정상화에 많은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할 텐데 여론과 야당의 지지를 구하는 건 더 어려워졌다. 워싱턴포스트는 “경제안정 계획이 포퓰리스트적 분노에 지배당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16일 발표된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선 87%가 금융기관 구제금융에 반대했다. 그나마도 AIG 보너스 사태가 터지기 전에 실시된 조사다.

존 보헤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추가 구제금융에 대한 공화당의 지지는 없을 것이란 신념을 확고히 해줬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도는 CNN 조사에선 64%로 한 달 전보다 12%포인트 떨어졌고, 퓨리서치 조사에선 59%를 기록해 처음으로 60% 아래를 기록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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