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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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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증시 사상 최대폭 하락… 어젯밤 일단 반등세로 출발
금 - 美국채 가격 급등… 경기부진 전망에 유가는 급락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융회사들 운명 ‘바람앞의 등불’
《미국 하원이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뼈대로 하는 ‘긴급경제안정법(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에 대한 표결을 시작한 지난달 29일 오후 1시 30분(한국시간 30일 새벽2시30분).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집계 결과에 뉴욕증시 트레이더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근소하게 앞서던 찬성표가 반대표에 뒤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술렁거리면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순식간에 292포인트 하락했다. 반대표가 점점 쌓여갔고 부결이 확정된 1시 45분경부터 투매가 시작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식을 내다팔았다. 다우지수는 5분 만에 700포인트 하락으로 낙폭을 키웠다. 증권 트레이더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사상 최대폭으로 하락한 뉴욕증시 상황판을 지켜봤다. 미 하원의 구제금융법안 부결 뉴스는 뉴욕증시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구제금융이 지연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국제유가는 폭락했고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는 금과 미 국채 가격은 폭등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에 따라 크게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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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중남미 증시 동반추락
이제 뉴욕 증시는 물론 전 세계 증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으로 내몰렸다.
지난달 29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777.68포인트(6.98%) 하락했다. 다우지수가 하루에 700포인트 넘게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락률로는 역대 17번째.
그런데 다우지수는 30일에는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11시) 기준으로 207포인트(2.0%) 상승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구제금융법안 부결의 충격 속에 30일 개장한 아시아 증시는 동반 급락세를 보였다. 30일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485.75엔(―4.12%) 하락한 11,259.9엔에 거래를 마쳤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210.35포인트(―3.54%) 하락했다.
중남미에서도 브라질 보베스파지수가 10% 이상 폭락해 주식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멕시코 증시와 아르헨티나 증시도 각각 5.5%, 7.5% 빠졌다.
한편 유럽 증시는 30일 하락세로 개장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돼 혼조세를 나타냈다. 파리증권거래소의 CAC40주가지수는 한때 3,900 선이 붕괴됐다가 장 중반에는 오후 3시 45분(한국 시간 오후 10시 45분) 기준으로 3,954.92(0.01%)를 기록하며 상승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유가↓ 금값↑
경기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 전망으로 유가는 10달러 이상 하락했다.
2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종가보다 10.52달러(9.8%) 떨어진 배럴당 96.37달러로 마감됐다. 이날 하락은 NYMEX 사상 하루 최대 낙폭이며 하락률 역시 2001년 11월 이후 7년 만에 최대라고 불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금과 국채 가격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급등했다.
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값은 지난주 종가보다 5.90달러 오른 온스당 894.4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0.24%포인트 떨어진(국채 가격은 상승) 3.62%를 기록했고 3개월 만기도 지난 주말 0.87%에서 0.32%로 급락했다.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런던은행간 금리인 리보는 6.8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피 말리는 시간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하원 부결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의회가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가 갖고 있는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현재 신용경색은 금융회사들이 누가 언제 쓰러질지 몰라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AAA’ 등급 또는 이와 유사한 수준의 채권을 담보로 잡고 국채를 대여하는 형식으로 금융회사들에 유동성을 지원해 왔다. 현재 시장에서는 국채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정부도 그동안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해 온 터라 여유 재원이 많지 않다. 게다가 담보로 내놓을 우량 채권이 없는 금융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결국 유동성 위기에 몰린 미국 및 전 세계의 금융회사들에는 구제금융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