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금융경색 ‘뇌관’ 제거 직접 나서

  • 입력 2008년 9월 9일 02시 56분


폴슨 美재무 지원책 발표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두 업체를 정부 관리체제로 편입하겠다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블룸버그 연합뉴스
폴슨 美재무 지원책 발표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두 업체를 정부 관리체제로 편입하겠다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블룸버그 연합뉴스
“주택시장 침체 끝나야 美경제 다시 살아나”

부실 모기지 경영권 인수… 단기자금도 지원

월가 “환영”속 “회복까지는 시기상조” 신중

미국 정부가 양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두 업체의 부실을 방치할 경우 미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시장 침체로 부실이 쌓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그동안 미국과 전 세계 금융 경색의 ‘뇌관’으로 작용해 왔다.

월가 전문가들은 미 정부의 모기지 업체 국유화 조치에 따라 앞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책 발표 다음날 개장한 아시아와 유럽 증시는 급등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천문학적인 규모의 금융권 부실채권 등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금융시장의 회복을 점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 미 역사상 최대 규모 구제 금융될 듯

1938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패니메이는 1968년에 민영화됐다. 프레디맥은 패니메이와의 경쟁체제를 만들기 위해 1970년 설립됐으며 1989년에 민영화됐다.

미국인들에게조차 이름이 낯선 두 회사는 미국 모기지 시장이 작동하는 데 ‘피’ 역할을 하는 회사다.

두 회사는 모기지 전문 업체나 금융회사들이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 장기 모기지 대출을 매입하거나 보증해준다. 모기지 대출을 매입한 뒤에는 이를 묶어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 시장에 판매한 뒤 이 돈으로 다시 모기지를 매입하거나 보증을 서주는 자금으로 활용해 왔다.

두 회사는 현재 미 주택대출의 절반가량인 5조3000억 달러의 모기지를 보유하거나 보증을 선 상태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집값이 급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이 급속도로 쌓여갔다. 두 회사는 지난해 3분기(7∼9월)부터 올해 2분기(4∼6월)까지 149억 달러의 순손실을 냈으며 주가가 폭락했다. 채권을 발행해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두 회사가 유동성위기를 맞으면서 모기지 금리는 계속 올랐고, 주택시장은 침체의 악순환에 빠졌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기존 주주 손실 불가피

이번 방안에 따르면 정부 기관인 연방주택금융지원국(FHFA)이 두 회사의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을 직접 맡는다.

미 정부는 우선 이들 업체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각각 최대 1000억 달러의 선순위 우선주(senior preferred stock)를 매입하기로 했다. 선순위 우선주는 종전의 우선주보다 배당 등에서 우월한 권리를 갖는 주식이다.

일차적으로 두 회사로부터 10억 달러씩 20억 달러 상당의 선순위 우선주를 매입한 뒤 단계적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그 대신 미 정부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최대한 신속하게 회수하기 위해 연 10%의 배당을 받게 된다.

이와 함께 주택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해 두 모기지 업체와 12개 연방 주택대출은행에 단기 자금을 지원하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시장에서 발행한 MBS도 사들일 계획이다.

기존 주주들에 대해서는 현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배당을 중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됐던 감자는 소액 주주들의 반발을 의식해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 월가, 정부 조치 환영

미 월가는 시장이 열리기 전인 일요일에 전격 발표된 이번 조치가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 씨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희소식”이라며 환영했다. 하트퍼드 파이낸셜서비스의 퀸시 크로스비 선임 투자전략가는 “특히 주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본다”며 “(주택시장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조치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이라는 점에서 미 납세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여전히 주택시장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주택압류와 모기지 연체가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모기지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

윌리엄 풀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 재무부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납세자 부담이 3000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1980년대 저축대부업 줄도산… 1240억달러 투입

10년전 롱텀캐피털에 35억달러 긴급 융자

올 3월 서브프라임 부실 베어스턴스 구제

■ 美정부 구제금융 사례

양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구제조치는 미 역사상 최대 규모. 미국은 자유시장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 기업의 도산이 국가경제를 위협할 만한 리스크가 있을 때마다 재정을 투입해 민간부문을 지원했다.

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구제금융의 역사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록히드 항공과 펜센트럴 철도에서부터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의 크라이슬러, 1980년대 저축대부업계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돼 왔다.

역사적으로 이번 모기지 업체 위기와 가장 유사했던 사례는 1980년대 팜크레디트와 저축대부업계에 대한 지원이었다. 미 정부는 당시 연쇄 도산사태에 빠진 저축대부업계 구제에 124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 당시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하하면서 경색된 자금시장에 숨통을 터주고 대형 금융사들의 협조 융자로 35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조성해 위기를 넘겼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항공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하자 미 의회는 15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대출보증을 업계에 지원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3월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도산 위기에 처한 미국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구제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