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 간 빼먹는 ‘벌처펀드’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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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 국가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벌처펀드’의 주머니만 채워 준다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벌처펀드는 독수리가 썩은 고기를 먹듯 파산한 기업이나 경영 위기를 겪는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비싼 값으로 되파는 투기 자본을 말한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 벌처펀드인 엘리엇 어소시에이츠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후원하는 사실이 밝혀져 벌처 펀드 논란은 대선 쟁점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이 최근 보도했다.

○ 벌처펀드의 행태

엘리엇 어소시에이츠의 자회사인 켄싱턴 인터내셔널은 몇 년 전 아프리카 콩고의 국가부채를 1000만 달러에 매입한 뒤 최근 소송을 통해 4000만 달러를 받아냈다. 투자액의 4배를 남기는 장사를 한 셈이다.

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도니걸 인터내셔널은 잠비아가 루마니아에 진 부채를 액면가의 11%에 불과한 328만 달러에 매입한 뒤 5배에 이르는 1500만 달러를 올해 초에 받아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채무이행 가능성이 희박한 국가부채를 헐값에 매입한 뒤 부채상환 소송을 제기해 채무국에 갈 국제 원조금을 받아내는 전형적인 투기 방식 때문이다.

잠비아는 1979년 루마니아에서 농업 자재와 서비스를 받아들이며 2980만 달러를 빚졌다. 잠비아의 경제 상황이 밝지 않자 루마니아는 최소한이나마 돈을 받기 위해 1998년 잠비아와 빚을 깎아주는 협상을 시작했다.

그 순간 도니걸 인터내셔널이 뛰어들어 루마니아에 조금 더 많은 돈을 쥐여주고 모든 권리를 승계한 뒤 잠비아에 대한 자산동결조치를 취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잠비아에 대한 원조를 결정하자 도니걸은 재빨리 영국 고등법원에 잠비아에 액면가와 이자를 합한 4200만 달러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인 논리만을 따진 영국 고등법원은 잠비아가 1500만 달러를 지급할 것과 잠비아에 대한 자산동결을 해제할 것을 결정했다. 결국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으려면 잠비아는 벌처펀드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했고 원조액 일부가 고스란히 벌처펀드로 갔다.

○ 피해국가의 대응 및 파장

도니걸이 부채 매입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잠비아의 부패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도니걸은 루마니아의 권리를 사면서 프레데릭 칠루바 당시 잠비아 대통령에게 200만 달러의 뇌물을 주고 잠비아가 액면가대로 채무를 이행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나아가 미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쳐 자금 상환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게 했다.

문제는 드러난 벌처펀드의 횡포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 IMF와 세계은행은 최근 저개발 국가들을 상대로 한 벌처펀드의 소송 규모가 18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피해가 확산되자 콩고는 더 이상 벌처펀드에 당하지 않기 위해 미 의회를 상대로 로비에 나섰다. 콩고는 500만 달러를 투입해 워싱턴의 로비 거리 K 스트리트에 사무실을 마련한 뒤 벌처펀드가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대는 것을 확인하고 민주당과 함께 벌처펀드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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