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지금]美 공화당 상원의원 4명의 상반된 선택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미국에서 상원의원은 ‘각자가 모두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권한과 명예가 큰 공직이다. 게다가 6년 임기 중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다음 선거에서 현역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거의 종신직처럼 여겨진다.

현역 공화당 의원들이 우수수 떨어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결과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워싱턴에선 재선이 확실시되는데도 은퇴를 선언한 2명의 중진 상원의원, 그리고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명예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고집하는 2명의 의원이 묘한 대조를 이뤄 화제다. 공교롭게 다들 공화당 소속이다.

공화당 내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비판해 왔던 척 헤이글(60·네브래스카 주) 상원의원은 10일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1996년 상원에 당선될 때 ‘상원의원으로 12년 일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했지 않느냐”는 게 사퇴 이유다.

이달 초엔 국방문제 전문가로 유명한 존 워너(80·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이 내년 1월 6일자로 30년간의 의원생활을 마감하겠다고 밝혔다.

1978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5선째인 그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두 의원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쟁 정책을 비판해 온 거물급이다. 일각에선 이들의 이라크전쟁 비판에 대해 ‘재선을 노린 선거용’이라고 꼬리표를 붙였지만 의원직 사퇴로 ‘충정’이 입증된 셈이다. 워너 의원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헤이글 의원은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다.

반면 ‘공항 화장실 동성애 구애 스캔들’로 1일 사퇴를 발표했던 래리 크레이그(62·아이다호 주) 상원의원은 사퇴 결정을 번복했다. “이달 말 사퇴하는 준비도 병행하겠지만 현재 진행 중인 소송과 윤리조사 결과를 보고 난 뒤 의원직 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올해 7월 ‘DC 마담’으로 불린 성매매업자 데버러 팰프리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은 데이비드 비터(46·루이지애나 주) 상원의원의 경우도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게 전부였다.

크레이그와 비터 의원 모두 강경한 도덕주의자로 자처해 온 인물들. 특히 비터 의원은 ‘깨끗하고 가정에 충실한 정통 보수주의자’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모아 왔다.

재선이 확실시되던 두 의원의 사퇴와 추문으로 자리가 흔들리는 의원들을 바라보는 공화당 지도부의 표정은 곤혹스러움 그 자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사고 지역구’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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