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손잡고 中 견제… 베트남 ‘양다리 외교’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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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넘어 이익을 향해”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왼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상회담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차이 넘어 이익을 향해”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왼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상회담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서로 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더 크고 광범위한 이익을 향해 매진한다는 우리의 다짐은 확고하다.”

베트남전쟁 종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은 방미기간 중 인권 문제를 둘러싼 비판에 적잖이 시달렸다.

21일 의회 방문과 22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인권문제에 대한 충고를 들었고, 23일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에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남베트남 정부의 국기를 흔들며 “찌엣 고 홈(Go Home)”을 외치는 2500여 베트남 교민 시위대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23일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더 크고 중요한 이익’을 강조하며 미국을 향한 구애의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의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S 교수는 24일 “찌엣 주석은 베트남이 서구 자본의 투자를 환영하고 투자 안전을 지켜주는 데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한편으로 “베트남이 적극적으로 미국을 향해 손을 내미는 또 하나의 주요한 목적을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세력균형 위해 ‘미국 끌어들이기’=S 교수는 최근 베트남 국제관계연구원(한국의 외교안보연구원) 간부들이 비공식 석상에서 설명한 베트남 정부의 외교 전략을 소개했다.

“베트남의 공식적인 대(對)강대국 정책은 등거리외교다. 그러나 베트남은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무척 경계한다. 따라서 미국이 동남아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인함으로써 자연스레 세력균형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게 베트남의 전략이다.”

‘이미제중(以美制中)’, 즉 미국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중인미(以中引美)’, 즉 ‘중국의 부상(浮上)’이라는 요인을 이용해 미국이 동남아 지역에 더욱 많은 (외교·경제적) 투자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베트남 국제관계연구원 간부는 “베트남의 노선은 결코 반(反)중국이 아니다. 경제적으론 중국과 더욱 밀착해 중국경제 고도성장의 떡고물을 최대한 누리되 외교적으로는 한 강대국이 일방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다극(多極) 구도를 형성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고 S 교수는 전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 이미지 경계=베트남 전문가인 호주 국방아카데미의 칼 태이어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베트남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일방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이 이 지역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고 분석했다.

미 행정부 역시 공개적으론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이 대중국 카드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냉전시대 봉쇄정책 같은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찌엣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도 “우리의 동남아 친선 정책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친미(親美)를 지역 내 세력균형추 확보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최근 상당수 아시아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심지어 북한도 북-미관계 개선을 ‘중국 견제’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일행은 3월 초 미국 방문 때 미국 측 인사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중국에 심각한 불신감을 피력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에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가 긴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 관리들도 최근 중국을 방문한 스탠퍼드대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김 부상 일행의 발언 내용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도 조용한 외교에 신경=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중국도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동남아에선 유독 조용한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동남아 등 주변 국가들을 상대할 때는 지역 정책의 주도권을 해당국에 주는 방식으로 한발 뒤에 서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다. 아프리카 인도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적극적인 강대국 외교를 펼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S 교수는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아 주던 보호막으로서 친미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이젠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직면해 ‘지역 세력균형추’로서 미국의 효용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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