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필요하지만 한국이 수치심 느낄 이유 없어”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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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18일 본보 기자와 만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차관보 출신인 에번스 리비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뉴욕=공종식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18일 본보 기자와 만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차관보 출신인 에번스 리비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뉴욕=공종식 특파원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은 정말 끔찍한 사건입니다. 비극이지요. 그런데 범죄를 저지른 학생이 ‘우연히’ 한국인이었다고 해서 한국이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어떤 ‘문제가 있는 개인’이 저지른 끔직한 범죄이지 한국과는 관련이 없어요.”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차관보를 지내고 올해 1월부터 뉴욕에 있는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는 에번스 리비어 회장은 18일 기자와 만나 “사건 발생 이후 이번 사건을 한국과 연관시켜 보도하는 미국 언론도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35년 넘게 국무부에서 일해 온 리비어 회장은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해 한국 정서에도 밝다.

“현재 한국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많은 한국인이 수치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발생한 만큼 전체 미국 사회 맥락에서, 그리고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리비어 회장은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인 만큼 한국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조승희는 한국보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지낸 기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버지니아 주민들이 이번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에 대해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사과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이는 개인의 문제”라고 말했다.

리비어 회장은 “지금 중요한 것은 희생자 가족, 그리고 부상한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하고 위로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이번 총격 사건으로 충격과 함께 비극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에 위로를 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어 회장은 “총격 사건 이후 48시간 동안 미국 TV 뉴스와 신문기사를 샅샅이 살펴보고, 워싱턴 정부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과 통화도 했다”며 “누구도 이번 사건을 한국과 연관시켜 보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를 보세요. 백인은 물론 아랍, 인도, 아시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규탄하고 하나가 됐어요. 인종, 종교, 출신국가는 상관없어요. 이게 미국이에요. 범인의 한국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일부 한국인 부모가 두려움 때문에 자녀의 거주지를 옮기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는 과거 집단 살해 사건에 대해 미국 언론이 보도한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여자 친구는 어떻고 등 이런 것을 취재하기 마련이에요. 범인이 백인이 될 수도,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미국 언론은 범인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요. 저는 이런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런 원칙을 계속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비어 회장은 ‘그래도 일부 미국인이 이번 사건 때문에 한국인들을 손가락질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큰 나라다. 따라서 이상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이슈로 만들려는 기자나 방송국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실제로 벌어지지도 않고 있는데, ‘상상 가능한 (미국 내) 반응’을 한국 언론이 지나치게 많이 보도하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언론의 조심스러운 보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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