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마음만 먹으면 무장… 美의 끔찍한 현실”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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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무장한 정신이상자의 위험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야 하나.” 16일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 사회의 해묵은 숙제를 이번 참사를 계기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보와 인터뷰한 미국 전문가들은 규제 강화는 몰라도 총기 소유를 허용한 미국 헌법 조항 자체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 끊임없는 교내 총기 난사 사건, 불안한 미국 시민들

미국에선 그동안 중고교를 비롯한 학교 내 총기 사건, 어린아이가 집안에 있던 총을 잘못 만지다가 발생한 사고 등이 끊이지 않았다.

1966년에는 오스틴 텍사스대 구내에서 총기 난사로 16명이 죽고 31명이 다쳤다. 2000년 이후 발생한 교내 총기 사건은 9건으로 한 해에 1건이 넘는다.

조지타운대 경영대 데이비드 워커 교수는 “미국의 어느 학교든 이번 버지니아공대와 같이 무차별 폭력에 취약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 1인에 1정꼴 총기 보유, 헌법이 보장한 총기 소유와 그 배경

미국에서 개인이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총기는 2002년 기준으로 대략 2억5000만 정. 대도시 중산층 이상 계층에서 총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인구 1명당 1정꼴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 ‘무기 휴대의 권리’ 조항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 총기 소유를 헌법으로 보장한다.

헌법 전문가인 조지타운대 법대 피터 버니 교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선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돼 왔다”며 “여기에는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뉴욕 보스턴 등 동북부 대도시에선 총기 소유 반대의 목소리와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는 추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짐 브래디 당시 백악관 대변인의 부인이 주도해 만들어진 1994년 브래디법에 따라 총기 취득 신청에서 허가까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심사를 하는 등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텍사스 주 등 남부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총기 소유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정서가 강하고 총기 소유 비율도 훨씬 높다. 많은 주에서 술을 사는 것보다 총기를 사는 것이 쉬울 정도다.

버니 교수는 “버지니아 주는 총기 관리에 대한 규제도 매우 느슨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버지니아공대가 있는 블랙스버그는 버지니아 주 남부로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지역이었다. 총기만행 예방 시민단체인 ‘브래디 캠페인’이 A∼F로 총기 관리 성적을 매긴 것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는 낙제점에 가까운 ‘C―’일 만큼 규제가 느슨하다.

주 또는 연방 당국의 과거 범죄 기록 조회를 통과하고 18세 이상이면 굳이 총기소지 허가가 없더라도 총기를 포함한 화기를 구입할 수 있다.

재미 한국인 학자인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미국인에게 총기 소유는 너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기 때문에 규제 강화는 몰라도 헌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이익단체의 로비도 한몫

총기 보유에 대한 제한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관련해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총기소지연령 상향 조정 등 총기규제 입법화에 나섰지만 NRA가 엄청난 돈을 쓰면서 반대 로비에 나서 성사되지 못했다.

NRA는 450만 명의 회원과 막대한 로비자금을 무기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대형 총기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막대한 로비자금을 써가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우호적인 세력 확보에 주력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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