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난사 용의자는 한국인]“설마 했는데…” 두번 충격받은 교민사회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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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이름은 ‘조-승-희’입니다. 한국인 영주권자로 철자는 ‘C-H-O, S-E-U-N-G, H-U-I’입니다.”

17일 오전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 기자회견장. 수사 당국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가 한국인 학생이라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200만 명이 넘는 재미 교포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용의자가 아시아계라는 사실이 전날 보도되면서 ‘설마, 설마’ 했던 교포사회는 “이럴 수가…”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버지니아공대는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대학. 이 때문에 워싱턴 메트로 일대의 교포 자녀들 중에는 이곳에 다니는 학생이 많다. 특히 버니지아공대는 학교 수준은 높지만 버지니아 주 거주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로 학교를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교포 자녀들에게 인기가 있는 학교.

김영근 전 워싱턴한인연합회장은 “한인 학생들은 항상 공부를 열심히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놀라워했다.

김 전 회장은 “워싱턴 메트로 기준으로 한인 교포사회는 20만 명에 이른다. 특히 공립학교 수준이 전반적으로 뛰어나 다른 주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는 교포도 많고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으로 이민 간 지 20년 된 정정애(49·여) 씨는 “범인이 한인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교민들끼리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등 교민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럽다”며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하필이면 한인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씨는 “한인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앞으로 2세, 3세들이 성장하는 데 좋지 않게 작용할까 걱정스럽다”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버지니아 한글학교 부형욱 교장은 “교민사회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대책회의를 열어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라며 “다들 앞으로 몸조심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거주하고 있는 최정남 목사는 “현지 상태가 어떤지 미국 각지에서 한인들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며 “한인이 용의자로 밝혀지자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느냐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 씨의 부모가 이곳에서 가까운 센터빌에 산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조 씨의 부모를 만났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서울장로교회 이종빈(48) 목사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불과 10분 거리인 센터빌에 사는 학생이라니 놀랍고 충격적이다”며 “어젯밤까지 아시아계로만 알려져 설마 한인일까 불안해했는데 현실로 나타나니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센터빌은 한인 타운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많은 한국인 가게가 문을 여는 등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서 어떤 피해가 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매클린 한인장로교회 김정우(49) 목사도 “한국인으로서 허탈감과 부끄러움이 앞선다”며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처럼 다른 인종에게 한국 사람들이 근면하지만 돈만 안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교포사회 규모가 가장 큰 로스앤젤레스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15년 전에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남상기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은 “우선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한다”며 “15년 전에 발생한 폭동에 따른 상처를 이제 거의 수습하고 재미 교민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1995년 미국에 유학 온 뒤 졸업 후 뉴욕에 정착한 한 교포도 “9·11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 사회에서 아랍계 이민자에 대한 시각이 싸늘하게 변하면서 아랍계 이민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총격사태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인교포사회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블랙스버그 한인침례교회의 정현 목사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믿기지 않는다”며 “한인 학생들과 교포들이 앞으로 생활하는 데 어려움과 편견이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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