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나토…美-유럽 반목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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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내년 초반이면 물러갈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28, 29일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26개 회원국 중 주요국 정상들이 레임덕에 접어든 상태다. 미군은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고, 나토군이 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정세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올해 회의는 2년 뒤 차기 정상회의를 기약하며 불투명한 기대만을 쏟아 놓는 수준의 모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래서인지 ‘확장(enlargement) 회의’ ‘전환(transition) 회의’ 등으로 불리던 과거 정상회의와 달리 이번 회의는 그 주제어를 찾기조차 모호하다.

일각에선 나토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의미하는 ‘변환(transformation)’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앤드루 슈워츠 선임고문은 ‘갱신(renewal) 회의’ 또는 ‘재건(re-founding) 회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나토는 있는데 동맹은 어디 갔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실종된 동맹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무엇보다 나토의 향후 임무와 역할을 규정할 5쪽가량의 전략문서 ‘포괄적 정치 지침’을 채택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문서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래서 매우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나토는 냉전시대 옛 소련의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맞서는 집단방위동맹으로서 공산권 붕괴 이후에도 회원국 수를 계속 늘리며 신속대응군을 가동하는 등 외형상 공고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과 유럽 간 갈등과 유럽 내부의 반목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나토의 현주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나토군 최초의 역외(域外) 군사 임무로, 한때 대서양동맹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병력은 전체 3만 명에 불과하고, 유럽 국가들의 지원은 소극적이다. 조지프 랠스턴 전 나토 사령관은 “나토군의 빈약한 공중수송(airlift) 능력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제안으로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참여가 거론되는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제안 역시 나토 내의 서로 다른 생각을 보여 준다.

미국은 역외 국가까지 포괄하는 ‘세계 민주국가 동맹’으로 키우자는 포석이지만, 당장 “나토의 본질인 ‘유럽-대서양 공동방위 기구’로 남아야 한다”는 프랑스의 반대에 부닥쳤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선 역외 국가의 훈련 참여수준 문제를 놓고 모종의 타협이 이뤄질 전망이다.

어쨌든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유일한 슈퍼파워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체제 시대가 끝나고 다극화로 가는 다양한 징후를 보여 주는 회의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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