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 저자 폴 케네디 교수 단독 인터뷰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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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는 13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한미 관계, 북한 문제 등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어렵게 성사된 이번 인터뷰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VIP룸에서 다른 배석자 없이 본보 취재팀 기자 두 명과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번이 한국 방문 7번째라는 케네디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내비쳤다. 또 “일본이 더 민족주의적이고 독단적이 돼 가는 부분을 미국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미국의 지나친 일본 중시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큰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한국인은 한편에서는 ‘당연하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문제로 미국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지금, 독도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 중국과 동북공정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바로 그 지금 돌려받아야 하느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세상은 조금 더 취약해지고 위험해졌으며 더 변덕스럽고 불확실해졌습니다. 장기적으로 전시작전권 환수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점은 지금이 적기가 아닙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이 계속 커져 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바보 같은 방법’으로 세계 전략을 재고(再考)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정치 성향 변화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이 더 민족주의적이고 독단적이 돼 가는 부분에 대해서 말입니다. 일본에 평화유지 등 더 많은 국제적인 책임을 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이러한 일본의 변화가 한국과 중국을 화나게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인가요.

“확실한 건 미국이 자국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더는 군대와 비행기지를 운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군대 철수는 적(敵)의 도발을 초래하지 않고 동맹국을 낙담시키지 않으면서 해야 합니다. 시기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철군이 점진적이라면 상관없지만 전시작전권 환수와 같은 상징적인 이슈들은 논쟁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동맹이 노무현 정부 들어 더 약화됐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만약 (한미동맹 약화에 대해) ‘걱정 마라, 그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걸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한쪽 국민이 상대편을 싫어하기 시작하면 민주국가에서는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증오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당연히 상처를 받고 화를 낼 것입니다. 영국과 독일은 19세기만 해도 매우 사이가 좋았지만 조금씩 나빠졌습니다. 무역과 해양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의심과 적대감, 편견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국민 감정의 변화는 무시하기 힘들며 이러한 변화는 (양국 관계에)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구한말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주변국과의 갈등도 고조되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항상 변화하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고 여러 현안이 있다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마리의 코끼리들’에 둘러싸인 개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4마리의 코끼리가 뛰면 개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것입니다. 한국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외교력을 기를 방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공식적인 외교와는 별도로 뒤에서 상대국과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2선 외교(second track diplomacy)’를 강화해야 합니다.”

―6자회담이 교착 상태입니다. 북한은 대북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대북 제재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한국 정부에는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서울과 워싱턴의 관계까지 자극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같은 나라에 대해 ‘채찍과 당근’을 함께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당근, 미국은 채찍 전략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뜻인 듯) 그러나 이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해 서로 싸우지 않고 좋은 결과를 만들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북한 문제는 미국 정책 순위에서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합니까.

“딕 체니 부통령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무엇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냐고 묻는다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문제 등이 먼저 거론될 것입니다. 한반도 문제는 7∼9위 정도일 뿐입니다. 칼 로브 백악관 부실장에게는 10위나 12위 정도일 것입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안보 전문가들은 한국에 잘해야 한다고 조언할 것입니다. 이는 당장 생각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당장 한국을 자극하지 않고 한반도는 그냥 조용한 채로 두자고 하는 의미죠.”

―최근 교수님은 영국의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에 9·11테러가 일어난 지 30년 후의 세계에 관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2031년에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세계는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러시아가 병립하는 ‘5극(極) 체제’가 될 것입니다. 5극 체제는 한국에는 더 안전한 세계가 됩니다. 세계는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테러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군사비가 2위인 중국의 6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미국 과잉 팽창의 징후가 아닐까요. 교수님은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의 쇠퇴를 예견했습니다만.

“미국이 과잉 팽창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미국의 국방비에는 이라크전쟁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이를 포함하면 미국은 중국보다 많게는 8배의 돈을 군사비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이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군사 팽창을 계속하면 역사적으로 과잉 팽창한 국가들이 겪었던 길을 그대로 갈 것입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폴 케네디 교수는

13일 오후 5시경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로비에서 폴 케네디 교수는 본보 기자들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하다 명함을 내밀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명함이 다 떨어져서…. 2분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후 객실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정식으로’ 인사하자고 청했다.

케네디 교수는 1983년부터 미국 예일대(역사학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지만 영국 북부지방 태생이다.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1970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독일 훔볼트재단의 연구 학자로 선정돼 본대학에서 연구를 했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현재 예일대 국제안보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는 역사학자이자 국제관계 전문가.

1988년 발간 직후 30주 연속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은 당시 40대의 그를 일약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강대국들이 재정적자를 내면서도 군사적으로는 확장하는 ‘과잉 팽창(overstretch)’이라는 개념을 통해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를 예견했다.

1989년 한국에서도 번역판이 출간된 이 책은 국제정치와 역사에 관심 있는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이 밖에 케네디 교수는 ‘21세기의 준비’ 등의 저서도 내놓았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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