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최초고용계약조항 폐기… 시라크-드빌팽 ‘白旗 치욕’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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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10일 새 노동법 내 최초고용계약(CPE) 조항을 폐기하기로 결정해 학생과 노동계의 시위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샤를 드골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1968년 학생혁명 때와 같은 대규모 시위에 정부가 손을 다시 든 것.

최초 고용 후 2년 동안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내용의 CPE는 학생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 왔고, 프랑스 전역이 두 달 넘게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학생, 노동계는 환영=대부분의 학생 단체와 노동계는 CPE 철회 결정을 환영했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브뤼노 쥘리아르 전국학생연맹(UNEF) 대표는 “결정적 승리”라며 반겼다. 하지만 “CPE를 대체할 새 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계속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클로드 마이 ‘노동자의 힘(FO)’ 사무총장은 “CPE는 죽었다. 목표는 달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CPE뿐 아니라 새 노동법 전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해 온 일부 학생은 “우리의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리더십은 실종=이번 CPE 철회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한층 더 레임덕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리더십이 이 꼴이 된 마당에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입은 정치적 타격은 더욱 크다. 그동안 CPE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드빌팽 총리는 이번 상처로 사실상 대권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르파리지앵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85%가 이번 사태로 시라크 대통령과 드빌팽 총리의 입지가 약화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드빌팽 총리의 대권 라이벌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됐다. CPE를 대체할 새 조치를 만드는 작업도 사르코지 장관이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총재 자격으로 주도해 왔다.

그동안 학생, 노조와 함께 시위를 주도해 온 좌파도 이득을 본 것으로 평가된다.

∇대외 이미지 추락=지난해 유럽 헌법 부결과 소요 사태로 실추된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는 더욱 추락했다.

영국의 한 전문가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는 이제 거의 무정부 상태로 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과 총리가 여론에 굴복한 터에 누가 대중이 거부하는 노동 개혁을 비롯한 경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프랑스 정부가 CPE를 포함한 새 노동법을 내놓은 것은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복지 모델을 다소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돌파구를 찾으려는 뜻이 담긴 것이었다. 경직된 고용 제도를 손질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을 붙잡고,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앞으로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농부, 어부, 철도 노동자, 학생, 교사 등 이해 당사자가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의 CPE 철회로 학생과 노조는 승리했지만 국가 전체로는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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