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본토 수복 계획, 반세기 만에 첫 공개

  • 입력 2006년 3월 27일 2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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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이 1960년대 입안한 중국 본토 수복 계획이 약 반세기 만에 공개됐다.

대만 국방부는 26일 대륙 수복을 위한 '궈광(國光)' 계획에 참여했던 퇴역 장성과 영관급 장교 17명의 진술을 토대로 관련 책자를 발간했다고 중국 언론매체들이 27일 보도했다.

궈광 계획은 그간 대만의 최고 군사기밀로 분류돼 왔다.

장 전 총통은 1961년 4월1일 타이베이(臺北)현 산샤(三峽) 산악지역에 '궈광 작업실'을 비밀리에 설치하고 육해공군의 우수한 장교 207명을 뽑아 본토 수복을 위한 26개 항의 작전계획을 마련했다.

1949년 대륙에서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밀려난 장 전 총통은 1950년대 '카이쉬안(凱旋) 계획' '중싱(中興) 계획' 등을 만들어 본토 회복을 노렸다. 하지만 규모와 내용 면에서 궈광 계획이 훨씬 더 컸다.

대만은 궈광 계획을 입안하면서 타이베이현 신뎬(新店)에도 '쥐광(巨光) 계획실'이란 작전기지를 만들어 미군의 감시망을 피했다.

궈광 작업실에는 육군의 루광(陸光), 해군의 광밍(光明), 공군의 칭톈(擎天) 등 3개 작업실이 있었다. 루광 산하에는 광화(光華·상륙작전) 청궁(成功·중국 남부 담당), 광밍 산하에는 치밍(啓明·63특전대) 수밍(曙明·64특전대), 칭톈 산하에는 주샤오(九¤·작전사령부) 다융(大勇·공수특전대) 등 작업반이 있었다.

장 전 총통은 1963년 5월 2일 개전 지침을 통해 본토를 3¤4일간 포격, 중국군이 반격해오면 공산당의 도발을 구실삼아 본토 수복전쟁에 나서려 했다. 그러나 국방부 참모들이 5월 30일 실행이 어렵다고 진언해 공격 계획을 포기했다.

때를 기다리던 궈광 계획은 1965년 절정에 달했다. 6월 7일 장 전 총통은 육군사관학교에서 군 고위간부들을 모아놓고 본토 수복을 위한 정신 강화 연설을 했다. 모든 간부들은 유서를 쓰고 대륙 상륙을 위한 D데이도 잡았다.

그 해 8월 6일 장 전 총통은 중국 남부 연안의 정보 수집을 위해 젠먼(劍門) 장장(章江) 등 군함 2척을 파견했으나 매복 중이던 중국 어뢰정에 침몰돼 약 200명의 특전사 장병이 숨졌다. 11월 12일에도 정보 수집에 나선 해군의 융쯔(永字)함이 중국 연안에서 격침됐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번번이 계획이 빗나가 본토 수복 계획은 좌절되었다.

이후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와 대만이 1971년 유엔에서 축출되는 등 정세 변화로 인해 궈광 계획은 이듬해 국방부 작전차장실로 이관된 뒤 결국 사장됐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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