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첨병 역할 자처하던 미국에도 ‘반세계화 바람’

  • 입력 2006년 3월 13일 15시 53분


코멘트
0
"항만과 같은 중요 시설을 외국에 넘기는 것은 우리의 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법을 제정해서라도 항만시설을 외국에 파는 일만은 꼭 막아야 합니다."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개발도상국가 인사의 발언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 국영회사인 두바이포트월드(DPW)가 뉴욕 등 미국의 6개 주요 항만 운영권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상원의원(뉴욕 주)이 한 말이다.

그동안 미국은 자유로운 자본이동 및 해외투자 확대허용이 전체적으로 부(富)를 증가시킨다는 세계화 논리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를 향해 규제철폐와 시장개방을 요구해왔다.

이처럼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자처해온 미국에 최근 '반(反)세계화' 정서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DPW의 항만 인수 문제는 반세계화 정서가 점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항만 운영권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반대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일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은 "외국인들이 미국의 핵심시설을 사들이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7일 실시된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DPW의 항만인수에 반대했다.

유권자 정서에 편승한 정치인들은 한술 더 떴다.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핵심 산업'에 대한 외국인 매입 금지 관련법안을 제출했다.

지난해 중국 해양석유총공사(CNOOC)도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 인수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에너지처럼 중요한 기간산업을 중국회사에 팔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좌절됐다.

뿐만 아니다.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 등으로 아웃소싱이 급증하는 것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CNN의 인기 경제뉴스 앵커인 루 답스 씨는 틈만 나면 "인도가 미국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화의 엔진인 미국에서 이처럼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세계화에 따라 피해를 보는 계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세계화로 미국 사회 전체는 이익을 얻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경쟁의 격화로 일부 근로자층은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편 미국 경제가 외국 자본의 지속적인 유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 세계화 정서가 미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