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국가비상사태' 평온 속 '언제든 폭발' 가능성

  • 입력 2006년 2월 26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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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상사태 선언 사흘째인 26일 필리핀은 겉보기엔 평온했지만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했다.

▽긴장의 휴일=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이날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 후 아로요 대통령은 미소를 지은 채 성당 밖으로 걸어 나와 밖에 있던 군중에게 손을 흔든 뒤 리무진에 올랐다. 국가비상사태 이후 정국 장악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였다.

군 지휘관들은 치안상태를 점검하는 회의를 마친 뒤 "상황이 현격하게 진정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새로운 쿠데타 세력 확산과 반 아로요 움직임이 진정됐는지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까지 마닐라 거리에선 반정부 시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닐라 시내에서도 집단행동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말라카냥 대통령궁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는 여전히 바리케이드와 컨테이너로 막혀 있다.

▽대대적 체포 작전=25일 경찰은 반 아로요 인사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필리핀 경찰청은 예비역 경찰군 장성 라몬 몬타뇨를 골프장에서 전격 체포했다. 앞서 몬타뇨는 24일 TV 방송에서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쿠데타 시도 혐의로 비상사태 발동 직전 체포된 다닐로 림 준장은 포트 보니파시오 육군본부에 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렉스 피아드 전 경찰청장과 케손 시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랜디 데이비드 필리핀대 교수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경찰은 이날 아침 반(反) 아로요 성향을 보인 '데일리 트리뷴'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지금까지 100여명의 반정부 인사들을 연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들끓는 야당진영=야당 측은 의회 표결로 비상사태를 중단시키려던 계획을 일단 연기했다. 48시간 안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프란시스 에스쿠데로 의원은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투표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에 체포된 크리스핀 벨트란 하원의원의 대변인 로메오 카풀롱 변호사는 이번 주 안으로 대법원에 비상사태 선언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풀롱 변호사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아로요 대통령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며 "비상사태 선언은 분명한 위헌"이라고 비난했다.

강경 성향의 노동당은 "과거에 독재자를 몰아냈듯 또 다른 독재도 뒤엎을 수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해 탄핵 위기 때 아로요 대통령을 지원했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도 "아로요 대통령이 '피플 파워' 정신을 말살하고 있다"며 돌아섰다.

▽군부의 동요는?=필리핀 군부는 과거 두 차례의 피플 파워 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최근에도 반발 기류가 포착됐다. 하지만 비상사태 이후 군부의 시위대 합류 등 이반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두 차례의 쿠데타 기도와 수많은 위기를 넘겼던 아로요 대통령은 군부에 대해서도 엄중한 단속조치를 명했고, 병사들의 시위대 합류를 막기 위해 군부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토록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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