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에 화났다"

  • 입력 2004년 11월 15일 14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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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에 유엔 직원 파견을 거부하고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에 대한 일련의 발언들이 미국인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4일 전했다.

아난 총장이 유엔 직원들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킨 것은 2003년 10월로 구호담당 직원들이 공격을 당하고 바그다드의 유엔 사무소에 폭탄이 떨어져 직원 등 22명이 사망한 때였다.

유엔 주재 미국 고위 관리는 "백악관에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미 정부가 아난 총장을 보는 시각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시에라 리온이나 콩고에 수천명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권고하는 아난 총장이 이라크에는 단 7명의 요원만 두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실을 말해준다'는 것.

이 관리는 "우리는 분노를 넘어선 단계에 와있다"면서 "이라크에서의 유엔의 역할에 대해 분명히 하자고 하면 그는 우리를 조롱한다"고 말했다.

아난 총장은 11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비난에 괴롭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듯이 이라크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화이며 이것을 위해 우리가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과의 갈등을 초래한 주요 사례는 세가지. 9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난 총장은 이라크 전쟁을 '불법'이라고 말했으며 10월엔 유엔 전범재판소 재판관들에 대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등 전범들을 재판할 이라크 판사들을 훈련시키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또 2주전에는 미국 영국 이라크 정부에 서한을 보내 팔루자 공세가 이라크를 더 고립시키고 내년 1월 선거를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리처드 윌리엄슨 전 유엔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이 모든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이라크에서 유엔은 자신의 이미지에 상처를 내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후세인 전 대통령의 치하에서 유엔이 운용했던 '석유-식량 프로그램' 비리에 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폴 볼커 위원회가 미국 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아난 총장이 미국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와도 마찰을 빚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아난 총장과 미국의 대립이 날로 격화되자 유엔 사무총장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자금 면에서 최대의 기여국인 미국이 유엔 분담금 지급을 거부했던 80년대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할 정도.

아난 총장 자신은 미국과 의도적으로 맞서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는 '이라크 전에 반대했던 국가들로부터 미국과 협조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느냐'는 뉴욕 타임스의 질문에 "상황은 그와는 정 반대"라면서 "나는 중동지역의 한 가운데에 혼란에 빠진 이라크를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이라크의 문명화는 이라크전에 대한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사회 공통의 의무라는 점을 전쟁 반대국가에게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난 총장은 또 "이라크에 파견된 유엔 요원의 보호를 전담할 국제군을 창설토록 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각국에 병력을 파견해줄 것을 설득했으나 저마다 국내정치 등의 사정이 있어 여의치 않다"고 말해 대규모 유엔 요원의 이라크 파견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치안문제 때문임을 강조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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