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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9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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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중 전회는 또 후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체제의 통치 능력이 검증받는 시험대가 됐으며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지도부가 합격점을 받았다면 4세대 지도부의 권력 기반은 더욱 공고해지는 반면 정책적 과오에 대한 지적이 여과 없이 나왔다면 후 주석에 대한 당내 일부 세력의 견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회의 중엔 특히 장쩌민(江澤民)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의 사임설이 잇따라 흘러나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의 사임이 이루어진다면 중국 지도부의 권력구도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는 또 당내 민주화를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당내 조직에 대한 감사제와 민주적인 방식의 간부 선발, 표결제의 확대 적용 등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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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중 전회에서는 뚜렷한 획기적인 조치나 결정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선 △하의상달(下意上達)형의 당내 언로 활성화 △정치국 의사 결정 과정 투명화 등을 통한 당내 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로 꼽혀 왔지만 이와 관련한 근본적인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가 갖는 한계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후 주석은 카리스마를 앞세운 역대 집권자들과 달리 당내 민주화와 정책의 투명성을 바탕으로 지지 기반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베이징(北京)의 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구시대의 이미지를 물려받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4중 전회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13억 인민의 ‘샤오캉(小康·일상생활에 여유가 있는 수준)’ 사회 실현을 위해 당 내부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점이다.
후 주석이 4중 전회 보고에서 강조한 ‘이민위본(以民爲本·백성을 근본으로 함)’ 정신을 당 내부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책 집행 능력이 중요하고도 절박한 과제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이번 회의에서 불완전한 영도 방식 및 통치시스템, 당 간부의 자질 부족, 개혁과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기층조직 등에 대한 문제점을 깊숙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軍權이 당권보다 확실한 우위▼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의 퇴진 여부가 국내외의 주목을 받는 것은 군권(軍權)이 당권(黨權)보다 우위에 서는 중국 특유의 권력구조 때문이다. 장 주석은 2002년 11월 당 총서기, 이듬해 3월 국가주석 등 당정의 최고 직위를 후진타오 주석에게 물려주었지만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 최고 실권자로 간주돼 왔다. 후 주석은 중앙군사위에서 장 주석의 아래인 제1 부주석을 맡아왔다.
중앙군사위 주석직이 권력의 정점으로 간주돼 온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현실정치에서 줄곧 적용돼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오쩌둥 자신도 군권을 거머쥠으로써 권력의 핵심에 올랐다. 중국 공산당이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에서 혁명을 시도했다가 실패, 대장정에 올랐을 때 마오쩌둥은 당의 재정비를 위해 1935년 1월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 회의를 열었고 여기에서 군사위 주석에 선출됐다. 앞서 군사위 주석이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군사 전술의 과오를 자아비판하고 군사위 부주석으로 내려앉았다.
마오쩌둥이 당의 최고 직위인 당 중앙위원회에 오른 것은 쭌이회의로부터 10년여가 지난 1945년 6월 제7기 1중전회에서였다. 이후 그는 1976년 9월 사망할 때까지 양대 권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華國鋒)은 군사위 주석과 당 주석을 겸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뒤 군사위 주석은 덩샤오핑이, 당 주석은 후야오방(胡耀邦)이 맡는 군권과 당권의 분리 현상이 재현됐다.
덩샤오핑은 1986년 1월 후야오방과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자오쯔양(趙紫陽) 등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2명의 당 총서기(1982년 12대에서 당주석제 폐지)를 축출함으로써 군권의 우위를 입증했다.
덩샤오핑은 1989년 11월 군사위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넘겨줌으로써 양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마오쩌둥 시대의 구조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장쩌민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에게 당 총서기를 넘겨준 뒤에도 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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