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요 딜레마' 필리핀 인질 문제로 정치적 위기

  • 입력 2004년 7월 13일 0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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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사진)이 이라크에서 납치된 필리핀 인질 문제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라크 테러단체 ‘칼레드 빈 알 왈리드 여단’(이라크 이슬람 군대)이 필리핀 트럭 운전사 안젤로 드 라 크루즈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자 철군 방침을 두고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의 딜레마=필리핀의 한 신문은 12일 사설에서 “테러범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고 아로요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다.

필리핀 내부의 테러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라크 테러단체 요구를 덥석 들어주면 필리핀 내부의 테러단체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우려가 크다.

필리핀에 경제지원을 하는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필리핀의 철군이 다국적군 와해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워싱턴은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 프란시스 리카르돈은 ABS-CBN TV 인터뷰에서 “아로요 대통령은 인질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필리핀의 장기적 이해관계에도 주의하고 있다”고 조기 철군 거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작 어려운 것은 51명에 불과한 군대보다는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 4000여명. 자칫 필리핀 외화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자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이라크 철군 요구 시위가 거세지자 아로요 대통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필리핀 인질 생사=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루즈씨의 생사 및 처형시간은 아직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납치범들이 협상 시한을 13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마지막 시한은 14일 오전 4시(한국시간). 그러나 테러단체가 필리핀 정부의 몸값 제의를 거부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마냥 기다리기도 불안한 상황이다.

필리핀 정부는 이에 앞서 10일 납치된 크루즈씨가 석방됐다고 잘못 발표하기도 했다. 델리아 앨버트 필리핀 외무장관은 “예정대로 8월 20일 필리핀 병력을 철수한다”면서도 이보다 빠른 조기 철군 요구에는 응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유엔의 이름 아래 다시 파병할 가능성도 남겨 놓았다. 테러단체의 요구에 정부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평소 국내 테러문제에 대해 “적대 세력과 반란군을 분쇄하겠다”고 말하던 아로요 대통령의 움직임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번 사건은 공산주의자와 이슬람 저항세력의 쿠데타 시도에서 살아남은 아로요 대통령에게도 큰 시련이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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