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라크 전쟁 배경-전개과정

  • 입력 2004년 2월 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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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라크는 1991년 4월 걸프전 (1차 이라크 전쟁) 종결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불법적인 대량 살상무기(WMD)를 보유하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 아랍 세계로부터도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던 이라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여론에 못 이겨 급기야 유엔무기사찰단(UNSCOM)을 수용, 1998년까지 250여 차례의 현장조사를 받았다. 이라크는 이 기간동안 48기의 장거리 미사일, 690톤의 화학무기 원료 등을 폐기했다.

1998년 12월 이라크가 후세인 대통령 궁 등 정치,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도 현장조사를 하겠다는 요구를 거절하자 UNSCOM은 이라크에서 철수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를 빌미로 이라크가 유엔결의를 무시했다며 그해 12월 16일부터 4일간 바그다드와 WMD 개발비축의 의심을 받고 있던 시설물을 집중 폭격했다.

그 후 UN 안보리는 유엔무기 사찰체제를 재건하기 위해 유엔 사찰위원회((UNMOVIC)를 발족,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을 다시 시도했으나 이라크는 자국에 대한 금수조치가 해제되지 않는 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텨 실제 사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던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라크를 이란 및 북한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부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WMD 즉각 폐지, 테러지원 중단, 국민억압 중지 등 5개항을 요구하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 이라크에 대한 징벌을 전 세계에 천명한 셈이다.

드디어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20일 후세인 정권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무법 정권'이라고 매도하면서 이라크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며 후세인 정권이 불법적으로 WMD를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 세계 평화를 위협하며 국민들을 억압하기 때문에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미국은 침공 전 영국은 물론 한국, 호주, 덴마크, 이탈리아, 네델란드, 일본, 필리핀, 스페인 등 30개 국가로부터 이라크 무장해제 지지를 받았다. 침공 명분을 쌓기 위한 국제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내세운 침공이유는 그야말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국제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은 그들이 앞세운 명분 보다는 자국의 실리와 국제 정치, 군사무대에서의 헤게모니를 위해 침략을 감행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독일의 귄터 그라스는 "이라크를 무장 해제시키려는 부시의 공격적인 행동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박관념에서 촉발된 것이다. 부시 가문이 석유 및 군사산업에 깊이 개입돼 있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통해 개인적인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있다"고 까지 비판했다.

이밖에도 적지 않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과시할 수 있다.

(2)미국의 군수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다.

(3)미국 기업들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4)중동 원유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

(5)최첨단 무기를 실전에서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6)미국의 막대한 국방예산을 정당화할 수 있다.

(7)대통령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베트남 신드롬'을 불식시켜 줄 수 있다.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은 국제적으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는 물론 미국 영국 내에서도 대규모의 반전 시위를 촉발시켰다.

▽전쟁 발발과 전개 과정

-2003년 3월1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 전역 TV 방송을 통해 이라크에 대해 48시간 시한의 최후통첩을 발했다.

-20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의 최후통첩 거부에 전쟁개시를 선언하며 전투기 등을 동원,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주요 시설들에 대한 정밀폭격을 감행.

-21일: 미군은 바그다드의 군 사령부, 비행장, 레이더, 대공포 시설 등 수백 곳의 전략적 목표지점에 크루즈 미사일 1,000천기 발사.

-22일: 이라크군, 남부 움 카스로 항구 및 나시리야 지역에서 강력 저항.

-23일: 이라크 국영 TV방송, 미군 전사자 및 포로 5명 모습 방영. 미군 바그다드 및 북부 모술, 키르쿠크 공습.

-24일: 이라크, 미군 아파치 헬기 2대 격추. 미군 키르쿠크 공습 계속.

-25일: 미영 연합군 움 카스르 항구 장악, 미 지상군 모래폭풍으로 북상지연. 부시 대통령, 전쟁수행을 위해 의회에 전비 등 747억 달러 요청.

-26일: 미영 연합군 민간 주거지역 폭격으로 이라크 민간인 14명 사망. 연합군 개전 처음으로 이라크 국영 방송국 폭격, 방송 일시 중단.

-27일: 미 공수부대원, 1,000명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투입. 움 카스르 항구서 기뢰 발견, 영국 첫 구호물자 하역 지연. 부시 대통령-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개전 후 첫 정상회담, 승리를 확신하다고 발표.

-28일: 연합군의 바그다드 시내 시장 폭격으로 이라크인 최소 30명 사망.

-29일: 이라크 중부서 개전 후 첫 자살 폭탄 테러 발생. 미군 4명 사망. 연합군, 200여명의 당원이 회의 중이던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집권 바트당사 맹폭.

-31일: 미군,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와 바그다드 남단서 첫 대규모 교전. 영국군 해병대 수백 명 바스라 남동쪽 공략.

-4월2일: 미군, 중부 카르발라서 공화국 수비대 4개 사단과 교전. 터키, 미군 보급 부대에 자국 영토 사용 허용.

-3일: 미군, 바그다드 국제공항 접근. 연합군, 이라크군 포로 9,000명 공개.

-4일: 미군, 바그다드 공항 완전 장악. 쿠르드족 민병대, 이라크군과 교전 끝에 카제르 교량 장악. 유엔 구호단원들 일부 바그다드 복귀.

-5일: 미군, 개전 후 바그다드 첫 진입 수백 명 사살 주장. 미 제101 공중 강습사단 카르발라 투입. 영국군, 바스라에서 이라크인 유해 200구 발견.

-6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 인근서 미군 전투기 아군 오인 사격, 쿠르드 민병대 및 취재 중이던 영국 BBC 방송의 통역사 등 18명 사망 45명 부상. 러시아 대사 일행 차량, 바그다드 탈출 도중 피격, 수명 부상. 미군, 바그다드 포위망 구축.

-7일: 미군 바그다드 시내 진입, 대통령 궁 3곳 장악. 미군, 후세인 대통령이 있다고 알려진 레스토랑 맹폭. 영국군, '케미컬 알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라크 독가스 담당 장관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시신 발견 주장. 이라크 공격으로 미군 2명, 종군 기자 2명 사망.

-8일: 미영 정상이 북아일랜드서 정상회담을 개최, 유엔이 전후 재건 중추 확인.

-9일: 바그다드 시내 곳곳서 미군 환영 인파 등장, 약탈 난무. 미군, 바그다드 사실상 완전 장악. 후세인 대통령의 고향 티크리트 공습. 중국, 러시아 전후 이라크 전역을 장악한 가운데 부시 미 대통령, 사실상 종전 선언.

연국희기자 ykook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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