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30일 자진 사임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9시 19분


22년간의 집권을 31일 공식 마감하는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77·사진)는 29일 마지막 각의를 주재했다. 1981년 집권 이후 883회째인 이날 각의에서 그는 각료들의 성원에 감사하고 차기 총리인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부총리(63)에게 똑같은 지지를 보내줄 것을 호소했다.

‘말레이시아 근대화의 아버지’ ‘마키아벨리식 독재자’ ‘아시아의 대변자’ ‘국제사회의 이단아’….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하고, 때로는 엇갈린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아시아의 신흥 경제부국 말레이시아도 없다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그가 이룬 경제적 업적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한국의 박정희(朴正熙) 시대와 종종 비견된다.

▽소신 뚜렷한 지도자?=마하티르는 총리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국과 일본을 경제발전 모델로 삼자는 ‘동방정책(룩 이스트)’을 주창하고 산업화를 추진했다. 당시 팔 것이라고는 고무와 주석, 야자열매밖에 없던 가난한 농업국 말레이시아는 이제 자동차, 정보기술(IT), 전자제품의 전진기지로 탈바꿈했다.

집권 22년간 말레이시아 경제규모는 4배로 커졌고, 세계 17위의 무역대국이 됐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평균 8∼10% 성장했다. 빈곤가구 비율은 30년 전 50%대에서 2000년 6%대로 낮아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호(11월 3일자)에서 “그가 말레이시아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간의 화합을 이끌어 낸 것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국제사회에서 마하티르 총리는 독자적인 행보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처방으로 제시한 국제금융시스템 및 시장개방을 전면 거부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앞세운 것은 유명하다.

당시 변동환율제를 고정환율제로 바꾼 그의 해법은 IMF 처방과는 정반대여서 ‘자유시장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그는 이 방식으로 위기를 넘겨 IMF 방식만이 좋은 처방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무자비한 독재자?=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경제발전 이면에는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다. 1987년 집권당인 통일말레이민족기구(UMNO) 총재 선거에서 부정 시비가 벌어지고 대법원이 선거 무효 판결을 내리자 그는 대법원 판사를 해임하고 국가안보조례(ISA)를 이용해 반대세력을 재판 없이 체포 구금하는 방식으로 숙청했다. 1997년에는 자신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로부터 도전을 받자 그를 부패와 동성애 혐의를 씌워 구속하기도 했다. 2001년 안와르 부총리 석방요구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2년 넘게 투옥됐던 언론인 히사무딘 라이스는 “마하티르 총리는 전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정부 비판자들을 ‘하수구’에 내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는 연고주의와 부패를 조장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뉴스위크는 마하티르 총리는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유대인 비난 발언으로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조화롭게 통치했다. 반(反)서구, 반미를 주창해 왔지만 한편으로 서구를 말레이시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다는 것.

▽마하티르 없는 말레이시아=시사주간 타임은 최근호(10월 20일자)에서 ‘말레이시아가 마하티르 없이도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후임자로 결정된 압둘라 부총리는 여러 면에서 마하티르 총리와는 대조적이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여론에 귀를 기울이며, 대결은 피하는 성격이다. 그는 또 너무 정직하고 지나치게 도덕적이어서 일부에서는 무능하다는 의미로 ‘말레이시아의 지미 카터’라고 평하기도 한다.

마하티르 총리가 자신의 약속대로 완전히 정계를 떠날지도 관심거리다. 일부에서는 그가 공직에서는 물러나도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만큼 말레이시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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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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