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포럼 "민족은 신화일뿐…" 열띤 공방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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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국사 해체를 주제로 뜨겁게 토론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한국과 일본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국사 해체를 주제로 뜨겁게 토론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북한의 핵 도발과 그에 대한 미국의 위협,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화, 동아시아에서 헤게모니의 복원을 시도하는 중국. 아시아 각국에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이때 서울 한복판에서 ‘국사 해체’ 논쟁이 벌어져 주목을 끌었다.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한일 학자들의 모임인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공개세미나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에는 200여명의 학자와 일반인들이 참석해 8시간에 걸쳐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포럼 소속 교수들이 주장하는 국사 해체란 ‘국사’를 ‘한국사’로 객관화해서 보자는 것.

이영훈 서울대 교수(한국경제사)는 “민족주의가 주장하는 공동체적 평균주의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원천일 뿐 아니라 분배를 둘러싼 계급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킨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민족주의가 ‘동포’라는 실체 없는 상징을 내걸고 반문명의 극치인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있다”며 “민족주의 재생산의 제도적 장치인 국사는 해체돼 한국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영국·아일랜드사)는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어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도 역사해석이 국수주의적이었지만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해 자신감이 생기면서 일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이 ‘친영파(親英派)’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역사 다시보기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민족의 독립, 통일이라는 협소한 개념을 넘어서서 역사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

이타가키 류타 도쿄대 교수(한국근대사)는 “민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신 냉전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중국이 공동으로 교과서를 기술하는 등 동아시아 연대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사옹호 쪽 입장에 선 서길수 서경대 교수(한국경제사)는 “국사 서술에서 몇 가지 과장된 것만을 강조해 국사 해체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국사 서술에선 과장보다 오히려 열등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영호 인하대 교수(한국근대사)도 “일본과 중국이 모두 국수주의로 가는데 왜 우리가 나서 국사 해체를 논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지현 한양대 교수(동유럽사)는 “한국이 국사를 해체한다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오히려 근원적 비판의 칼을 들이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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