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확전놓고 심각한 딜레마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7시 44분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한 반전 무드가 국내외에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확전 여부를 놓고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의회와 언론 등은 4주째 이어진 공습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규전을 펼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당장 혹한기 전투를 치러야 하는 데다 미군의 희생이 뒤따를 것이 뻔해 고민거리만 늘고 있다. 미국은 30일 에도 아프간 수도 카불 북부 전선과 남부 칸다하르를 맹폭했다.

▽왜 확전 목소리 나오나〓미국은 당초 대규모 공습과 특수부대 투입에 의한 속전속결 전략으로 ‘오사마 빈 라덴 제거와 탈레반 정권 붕괴’라는 전쟁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하지만 4주간의 맹폭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건재한 데다 빈 라덴의 소재에 대한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전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이 29일 “아프간 전쟁에서 과연 누가 이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전과에 회의적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과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민주), 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민주) 등이 28일 일제히 “아프간 영토를 장악할 정도의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그동안의 작전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확전을 꺼리는 이유는 뭔가〓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9일 조국안보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현시점의 전략은 우리 군사력을 탈레반의 방위력 무력화와 알 카에다 훈련기지 파괴에 사용하는 것이며, 지금까지의 전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해 일단 확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부시 대통령이 확전을 꺼리는 것은 자칫 끝없는 소모전으로 ‘제2의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하 40도를 넘는 혹한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해발 7000m의 험준한 산악지형, 전 국토에 널린 동굴과 난공불락의 은신처는 미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또 전쟁이 장기화하고 지상군 투입으로 미군의 희생이 속출하게 되면 국내 여론은 급속도로 반전 쪽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 미국은 92년 소말리아 전쟁에서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당시 소말리아 무장세력이 미군 시체를 발가벗긴 채 밧줄로 묶어 차로 끌고 다니는 장면이 CNN 등에서 연일 방영되자 미 여론은 즉각 철군 쪽으로 돌아섰다.사실 미국이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대규모 공습’과 ‘치고빠지기식 소규모 특수전’ 전략을 택해 전쟁 조기종결의 타이밍을 놓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정규군 투입은 전쟁 명분의 변질로 비친다. ‘테러 제거’에서 ‘이슬람국가에 대한 공격’ 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슬람권이 본격 반발할 것이고 국제연대도 흐트러질 게 분명하다.

▽확전을 않을 경우 대안은 있는가〓미국의 최근 공습목표를 보면 제한적 전술 변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북부동맹 장악 지역에 전진기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확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수부대 투입병력을 증강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양의 항모 키티호크호에서 5, 6시간씩 헬기로 제한된 병력을 공수, 작전하는 것으로는 지금까지의 전쟁 양상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단기간이라도 특수전 병력이 체류할 수 있는 활동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전진기지 구축에 담긴 뜻이다.그러나 이런 제한적 전술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치밀한 승리 전략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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