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계 '보복테러'공포

  • 입력 2001년 9월 19일 02시 31분


미국 텍사스대 중동문학과 교수이자 이슬람교도인 모하메드 모하메드는 11일의 테러 참사 직후 지나가던 행인이 자신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고 얼굴에 침을 뱉어 한동안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 외출해야 할 때는 머리에 두르는 터번을 뗀 채 나간다.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의 존 헤네시 총장은 지난 주말 1700여명의 교수 및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테러 참사와 관련해 학생들이 이성을 잃지 않도록 지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일부 학생들이 중동계 학생들에게 협박성 e메일을 보내는 등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살비행테러 이후 아랍계와 이슬람교도를 겨냥한 보복 공격과 증오 범죄가 잇따르고 있어 당사자들은 물론 미국 정부까지 긴장하고 있다. 17일 현재 미 연방수사국(FBI)이 집계한 보복 또는 증오 범죄는 40여건. 16일 애리조나주에서 한 주유소를 운영하던 인도계 주민이 총에 맞아 숨졌고 지난 주말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파키스탄인이 피살됐다. FBI는 이 사건들이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6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 종교단체들은 비상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지도자들은 TV에 출연해 미 국민의 자제를 호소했다. 또 로버트 뮬러 FBI 국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를 용납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직접 워싱턴의 이슬람사원을 방문해 “테러의 얼굴은 이슬람의 진정한 신앙과는 다르다”며 미 국민에게 ‘보복성 테러’를 가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신기욱 교수는 “테러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전쟁에 대한 초조감 등으로 미 국민은 지금 큰 혼란에 빠져 있다”며 “증오 범죄는 이러한 혼란의 한 단편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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