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테러참사]뉴욕무역센터 LG증권 이동훈과장 탈출 체험담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25분


납치된 여객기가 미국 뉴욕의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의 86층을 들이받은 11일 오전 8시 45분(한국시간 오후 9시45분). 불과 2개 층 아래인 같은 건물 84층에서 근무 중이던 LG투자증권 뉴욕 현지법인 이동훈 과장(34·사진)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과장은 당시 사무실에 전체 직원 9명 중 3명이 출근해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과장의 생생한 체험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천장이 일부 무너져 내렸다. 창문 밖으로 비행기 파편 같은 게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순간 비상상황이라고 직감하곤 직원들과 함께 복도 쪽으로 나갔다. 하지만 복도 벽이 무너졌는지 앞이 보이질 않았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먼지와 연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건으로 빈틈을 메웠다. 얼른 911(한국의 119)에 신고했다. 마스크를 찾아 쓰곤 TV를 켜니 비행기 충돌사건이라는 속보가 나왔다. 그러나 화면이 흔들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건물이 많이 흔들렸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복도 쪽으로 나갔다. 비상구를 찾아 문을 열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열을 지어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틈에 섞여 80층까지 내려갔으나 화재가 발생,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었다. 다시 81층으로 올라와 소방호스를 끌어내 80층으로 내려가면서 불을 껐다. 서로 당황하지 말자고 격려하며 계속 아래로 아래로 걸었다.

50층 정도까지 내려가니 공기가 다소 맑아졌다. 1층까지 내려오는데 족히 1시간 이상 걸렸다. 정신 없이 내려오느라 다리가 아픈지도, 숨이 가쁜지도 몰랐다.

오전 10시 5분쯤 1층에 도착했을 때 남쪽 빌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있던 북쪽 빌딩도 충격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천장에서 뭔가 쏟아져 내리며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다. 몇몇은 바람에 날아가기도 했다. 모두들 엎드렸다.

1분 정도 지났을 때 랜턴을 든 소방관들이 나타나 모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10명씩 그룹을 지어 손을 잡고는 소방관들이 가게 이름들을 보며 안내하는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나가자 빛이 보였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친 사람들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을 때 갑자기 ‘피해’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오전 10시 28분쯤이었다. 우리가 갇혔던 빌딩이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작정 뛰었다. 신발을 잃어버려 맨발인 채로 뛰었다. 온 천지가 먼지구름으로 뒤덮였고 사방엔 건물 잔해들이 쏟아졌다. 앞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밟혀 다친 사람이 속출했다. 우리 직원 한 명도 다쳤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 경찰과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가 범벅이 됐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같은 몇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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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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