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집권 20돌…독자노선 경기침체로 빛바래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33분


아시아의 마지막 남은 장기 집권자인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76)가 16일로 취임 20주년을 맞는다. 말레이시아의 국부(國父)란 칭송도 있지만 독재자란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첨단 행정수도 푸트라자야에 있는 집무실은 최근 호화판으로 신축됐다. 관저도 10억링기트(약 3500억원)를 들여 궁전처럼 새로 지었다.

이처럼 호사를 누리는 마하티르 총리지만 취임 20주년을 앞둔 심경은 착잡하다. 최근 정치 경제 상황 때문.

마하티르 총리는 7일 집권 국민전선연합 연차총회에서 “사회는 우리 당에 더 냉담해지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국가 발전을 위해 우리가 기울인 노고에 감사하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내비쳤다. 그는 한시간 연설 중 절반을 가난한 말레이시아를 동남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거부한 채 금융위기를 독자적으로 극복한 공로 등을 자찬하는 데 할애했다.

주석 팜유 고무 등 원료 수출에 의존해온 가난한 농업국 말레이시아가 첨단산업국가로 탈바꿈한 데는 사실 마하티르 총리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마하티르 총리는 외부의 도움을 거부한 채 ‘아시아적 가치’를 앞세워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아시아국가에 불리한 국제금융시스템과 시장 개방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변동환율제를 고정환율제로 바꾸는 등 독특한 방식을 취했다. 그는 결국 금융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손가락질하던 서방세계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추앙받던 마하티르 총리에게 정치적 위기가 닥친 것은 1998년. 후계자로 꼽히기도 했던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를 전격 구속하면서부터다. 경제 정책에 대한 노선을 달리해 자주 의견충돌을 빚던 안와르 부총리를 부패와 동성애 혐의 등으로 수감하자 그를 독재자로 규탄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거세진 비판은 99년 총선에서 여당 의석이 22석이나 줄어든 결과로도 증명됐다. 올 1월에는 야당 지지자 3000여명이 마하티르 총리의 퇴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침체 국면을 보이고 있는 경제도 마하티르 총리를 괴롭히고 있다. 콸라룸푸르 시내에는 공사 중단으로 흉물이 된 20∼30층짜리 빌딩이 많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말레이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2%에서 3.2%로 크게 낮췄다.

후계자 문제도 확실하지 않다. 한때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다임 자이누딘 재무장관이 6월초 사임했는데 이는 고정환율제 유지 등 경제정책에 관해 총리와 견해를 달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마하티르 총리는 2004년 총선 뒤에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완전한 정계 은퇴는 아니고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처럼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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