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언어는 하나였다"…美그린버그 박사 주장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48분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약 5000개.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폴란드의 치과의사 라자루스 루드비히 자멘호프(Lazarus Ludwig Zamenhof·1859-1917)가 창안한 에스페란토는 국제어로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고, 영미권의 강세 속에 영어가 세계공용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어가 갖는 문화적 파급효과로 인해 영어는 곳곳에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언어장벽은 세계화의 가장 큰 장애요소로 지적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조셉 H 그린버그(Joseph H. Greenberg)박사는 이 달 중 발간될 저서에서 포르투갈로부터 일본에 이르는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포괄하는 상위의 어족(語族)으로 ‘유라시아어(Eurasiatic)’를 제시했다.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언어가 하나 또는 소수의 언어에서 분화됐으리라는 주장이다.

올해 84세인 그는 유라시아어의 어휘에 관한 또다른 책을 집필 중이다.

‘인류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됐다면 언어도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누구나 해 봄직한 가정이지만 유전학과 고고학에서의 끈질긴 인류 시조 추적에 비해 언어학자들은 최초의 언어를 거의 찾지 않는다. 설사 최초에 단일 언어가 있었다 하더라도 언어는 매우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수천년 전의 언어를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린버그박사는 유전학자들이 사람들 사이의 유전자 유형으로 원시인의 이동로를 재구성하는 데 주목했다. 스탠퍼드대의 선구적인 집단유전학자인 루카 카발리-스포자박사도 “언어와 유전자 사이에 의미있는 유사점들이 많이 보인다”고 분석한다. 그린버그박사는 언어사에서 중요한 언어집단들을 골라 300개의 핵심 어휘를 기초로 어휘을 비교하며 언어의 분화를 추적한다. ‘p’가 ‘f’로 변한다든지, ‘m’으로 시작하는 말은 일인칭을 가리키고, ‘n’이 속한 말은 부정을 나타낸다는 등의 공통점을 찾아내 추론하는 것이다.

그린버그의 연구는 아프리카 언어에서 시작됐다. 1955년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아프리카대륙의 언어들을 4개의 주요 어족(語族)으로 묶었다. 그의 아프리카 언어 분류법은 10년간의 논쟁을 거치며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미시건대의 언어학자인 사라 토머슨박사는 “그린버그박사는 소리와 의미를 엄밀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자료는 우연적인 데이터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린버그박사와 그의 동료인 메리트 룰렌박사가 보기에 이들의 요구는 결국 어족(語族)의 구성을 방해하는 것일 뿐이었다. 룰렌박사는 “그들이 요구하는 그런 방식은 너무 완벽해서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는 그릇된 완벽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언어의 전 역사를 추론할 수 있는 언어계통도를 만드는 것이다.

아프리카어에 이어 아메리카어 연구에 들어간 그린버그박사는 아메리카어에서 100여개의 독립된 어계(語系)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반 학자들과 달리 아메린드(Amerind)어계, 나-딘(Na-Dene)어계, 에스키모-앨류트(Eskimo-Aleut)어계 등 단지 세 개의 어계를 내세운다.

이렇게 아메리카어들을 분류하면서 아메리카의 주요 어족이 유라시아 대륙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은 그린버그박사는 유라시아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아메리카의 언어(Language in the Americas)’(스탠퍼드대 출판부)를 발간한 지 13년만에 내놓은 이번 저서에서 그는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의 언어들을 분류해 이른바 ‘유라시아어(Eurasiatic)’라는 상위 어족에 포함시켰다.

유라시아어는 인도-유럽어, 우랄어, 알타이어, 한국-일본-아이누 그룹, 에스키모-앨류트, 그리고 길략어와 축치어라는 두 개의 시베리아 어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어 그룹이 받아들여진다면 전세계 약 5000개의 언어들은 12개의 상위 어족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단일 언어로 정리될 차례다.

그의 주장과 방법론은 학계의 검증을 더 거쳐야겠지만, 단일언어의 꿈을 버리지 않는 인간은 그린버그박사의 학설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고 있다.

-The New York Times(http://www.nytimes.com/library/national/science) 참고-

<김형찬기자>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