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츠제커 前독일대통령 내한 특별강연]

  • 입력 1999년 4월 19일 18시 58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독일대통령이 19일 서울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동북아시아 국제평화회의’에서 ‘유럽과 독일에서 바라보는 동북아시아’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나는 독일의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말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한국에서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통일비용과 관련해 한국이 독일을 모델로 한 복지국가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독일의 경우 사회보장 시스템 때문에 통일이 상당한 재정부담을 초래했다. 오랜 분단 후의 통일은 고비용을 요한다. 분단이 오래 지속될수록 통일비용은 더욱 커질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통일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서독은 한때 동독과 일체의 접촉을 회피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이는 동독에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동독당국이 주민들을 더욱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서독은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동독을 국제법상의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되 국가적 정통성을 전면 부인하지 않으면서 신용차관을 주고 문화 체육 분야의 교류를 실현했다. 이로 인해 동독은 서독의 지원에 의존케 됐다.

또 동방정책을 통해 서독의 제일 중요한 우방인 미국이 동독과 국교를 맺게 했다. 이에 대해선 서독 내에서도 동독의 체제를 강화시킨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독을 변혁시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했고 이를 대담하게 동서관계에 적용했다. 초강대국들이 결정적 위치에 있긴 했지만 분단국으로서 우리가 취한 주도적 조치는 통일을 위한 긴장완화를 촉진했다. 독일은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동서독 간에 인적교류가 단절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이 그처럼 신속히 진행되리라고는 정말 기대하지 못했다. 나는 한국인들이 통일을 준비할 여유가 없는 북한주민 대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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