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ASEM을 주름잡았다…첫국제무대 화려한 데뷔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4일 폐막된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중국 오성홍기(五星紅旗)의 ‘다섯개 별’과 함께 또다른 별 하나가 런던하늘을 수놓았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주룽지(朱鎔基·69)총리였다.

12억 인구를 이끄는 21세기의 지도자인데다 중국 경제개혁의 사령탑인 그는 이번 회의를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지난달 19일의 취임기자회견에서 솔직한 태도와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는 유창한 영어와 놀라운 친화력으로 회의기간 내내 무대의 중심을 지켰다.

지난달 31일 런던도착 직후 그는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을 알현한데 이어 한국 영국 프랑스 일본 정상들과 잇따라 회담을 가졌다.

2일에는 15개국으로 구성된 거대한 유럽연합(EU)과 중국간의 첫 정상회담이 열려 한껏 높아진 중국과 주총리의 위상을 잘 보여줬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주총리의 개혁프로그램에 반했다”며 “그의 재치와 유머감각에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추켜세웠다.

일부에서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가 회의 기간 내내 풀이 죽은데 비해 주총리는 ‘아시아의 대형(大兄)’처럼 행동했다”고 평할 정도였다.

중국의 힘은 물론 경제력이 바탕을 이룬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1위이며 지난해 교역규모(7천2백23억달러)는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중국은 또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EU의 두번째 무역상대국이다. 지난해 5월 베이징을 방문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미국을 정치 경제적으로 함께 견제하기 위해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의했을 만큼 중국은 유럽의 매력적인 파트너다.

중국의 주가가 높아진데다 주총리가 이데올로기 냄새가 덜 나고 서구인들의 취향에 잘 맞는 유연한 지도자이고 보니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주총리는 유럽 정상들에게 “아시아 경제위기 해소를 위해 위안(元)화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중국에 대한 투자확대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지원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EU측은 중국과의 연례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중국내 인권문제는 간략히 언급해 주총리를 예우했다.

〈윤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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