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극복 지도자/세디요대통령]경제회생위해 1당독재포기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3분


지난 1일은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 대통령의 취임3주년이었다. 6년 단임제 대통령의 반환점을 통과한 그는 이 3년동안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지금은 천국. 2일 멕시코의 주요일간지인 레포르마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76%. 3개월전 조사했을 때도 같은 76%. 이제 자신에 대한 지지가 국민 속에 뿌리내렸다고 한숨 돌리고 있다. 정말 숨가쁜 3년이었다. 멕시코의 극심한 정치적 소용돌이속에 94년3월 집권여당인 제도혁명당(PRI)의 대통령후보 도날드 콜로시오가 피살됐고 세디요의 운명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세디요의 부상은 국가의 명운을 바꿔놓은 계기였다. 당시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은 퇴임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위해 67년째 집권하고 있는 여당후보의 대타로 교육장관과 예산기획장관을 지냈을 뿐 정치적 무경험자인 세디요를 지명했다. 그는 습관처럼 여당후보를 뽑아온 멕시코의 투표성향에 따라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49%의 역대 최소득표율에, 42세의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곧바로 위기가 닥쳤다. 몇년간 인위적으로 억눌러왔던 멕시코통화 페소화의 대추락이 시작됐다. 취임한지 20일만에 그는 페소화 폭락을 막기 위해 환율변동폭을 15.3%로 확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경제안정대책을 직접 발표했으나 경제의 추락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일주일 사이 페소화는 64.7%나 평가절하됐고 주식시세는 44%나 폭락했으며 나아가 2만5천개의 기업들이 도산 또는 위기에 몰리면서 거리에 한해동안 1백만명의 새로운 실업자가 생겼다. 부패하고 무능한 중앙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대와 반군들이 실업자들의 뒤를 따라 거리에 나왔다. 오직 군대와 경찰력만으로 국가가 유지됐다. 경제관료출신인 세디요는 온갖 비난 속에서도 놀랄 만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2백72억달러를 끌어와 급한 불을 끄면서 자신의 신념이기도 한 자유주의적 개방경제의 틀을 계속 유지했다. 무엇보다 그는 집권여당의 일당독재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의식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일당독재는 함께 가지 못한다』고. 집권여당의 총재여서 이같은 말을 겉으로 내뱉지는 못했어도 그의 조치는 일당독재를 자발적으로 마감하는 수순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절실한 고통분담이 요구되는 경제위기에서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그만큼 책임과 권한을 분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경제개혁과 정치 민주화를 같은 궤에 놓고 추진한 것이 그의 리더십 요체였다. 그는 집권후 첫 조각에서부터 야당의원을 검찰총장에 기용했다.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검찰팀이 전임 대통령의 형인 라울 카를로스를 부패와 살인혐의로 전격 구속하자 카를로스 전 대통령은 해외로 달아났다. 그의 정치적 그늘이 사라진 것이다. 사법부를 명실상부하게 독립시키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중립화하며 선거자금을 여야 공평하게 배분하는 조치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심지어 반군들마저 휴전을 선언하게 만들었다. 1백년만에 최악의 경제위기로 불리던 95년 10월26일 그는 기업 근로자 정부 중앙은행대표 등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경제회생을 위한 연대 선언」에 서명토록했다. 그들은 선언문을 통해 근로자와 시민은 경제회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감수하고 기업과 정부는 상황이 호전되는대로 고용증가와 실질임금 인상, 가격안정을 이룰 것을 약속했다. 이후 경제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95년 2.4분기 경제성장률은 -9.2%. 「경제회생을 위한 연대선언」이후 수출이 늘어나고 물가가 잡히면서 경제성장률은 -7.0%(95년 4.4분기), -0.4%(96년 1.4분기)로 회복세를 보였고 96년 2.4분기부터 6.4%의 본격 상승세를 타 97년 2.4분기에는 8.8%라는 16년이래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멕시코 국민들은 이제 그를 유별난 지도자 보다 국민의 뜻을 읽어가며 경제위기를 극복한 「보통시민」으로 보고 있다. 국민지지에 바탕을 둔 민주적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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