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와 환투기]외국 투기성자금 큰폭 이탈

  • 입력 1997년 10월 23일 20시 05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팔자」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어 기아사태 해결 이후 금융시장 안정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홍콩 주식시장에서 국제 환투기세력이 「치고 빠지기」식 거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투기성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동남아국가와 똑같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은 동남아 증시가 동반 폭락세를 보이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시장의 투자비중을 줄이고 남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8백59억원, 22일 8백81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한 외국인들은 23일에도 6백12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 이달 들어 5천4백여억원어치를 「정리」했다. 이는 증시개방 이래 월별로 사상 최고액. ▼투기성자금 얼마나 되나〓9월말 현재 외국인들의 주식투자자금은 16조5천억원 규모. 이중 증권당국이 「투기성」으로 분류하고 있는 헤지펀드는 5천억원 정도에 그쳐 비중은 미미한 편. 그러나 투신사 외수펀드를 통해 들어온 투기성자금은 집계가 불가능해 전체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분석들이다. 증권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92년 증시개방과 동시에 들어왔던 헤지펀드들이 지금은 상당부분 빠져나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지난해 초 규모가 6천억원에 달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 퀀텀펀드보다 규모가 작은 「타이거펀드」는 이리저리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고 증권사 국제영업 담당자들은 전했다. ▼외환시장 교란요인은 없나〓동남아에 비해 자본 및 외환거래가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환투기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해석. 그러나 환투기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이 직접 외환을 사고 팔지는 못하지만 주식투자자금 유출입을 통해 환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 또 역외선물환(NDF)시장을 통해 국별 환율차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재정(裁定)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루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외환컨설팅업체 핀텍의 배우규(裵禹奎)대표는 『아무리 틀어막아도 환투기꾼들은 가격구조가 왜곡돼 있는 곳에 몰려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한국시장을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영국 투자자문사 「아틀란티스」의 피터 어빙사장은 『지금처럼 외국인들의 마음이 한국시장에서 떠난 적은 없었다』며 비관론을 폈다. 그는 기업의 연쇄부도, 국제 자본시장에서의 한국의 신용도 하락, 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 실추 등이 외국인들을 떠나가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증권사의 서울 지점장도 『무리한 차입경영, 팽창경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발을 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쇄부도보다 더 나쁜 것은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라며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은 서울지점을 아예 폐쇄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홍콩은행 서울지점 장덕영(張德寧)지점장은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단기적 어려움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번쯤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며 『특히 기아사태 해결은 그동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긍정평가했다. 〈이강운·정경준·천광암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