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포 작품세계]약자대변 풍자 『짜릿』

  • 입력 1997년 10월 10일 08시 03분


「뜻밖이다」. 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71)가 선정된 데 대한 외신의 첫 반응이었다. 올해 세계 각국 언론이 제시했던 후보 명단에서 포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포는 아일랜드출신으로 프랑스어 작품을 써서 이 상을 받은 사뮈엘 베케트(69년)이후 첫 극작가이며 이탈리아에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여섯번째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포를 선정한 데 대해 그의 작품들이 『해학과 진지함을 겸비했으며 사회의 악습과 불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넓혔다』고 이유를 밝혔다. 90년대 이후 세계문학의 변방과 피지배계층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두어왔던 스웨덴 한림원이 「연극계의 급진주의자」이자 20세기 「민중연극」의 대명사인 포에게 노벨상을 준 것은 기왕의 보수적 시상관례에 비추어 의외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포는 이미 세계 연극계에서는 20세기의 「교과서」가 된 인물.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70년) 「안내놔 못내놔」(74년)는 전세계 연극팬들이 그를 해학의 달인으로 꼽도록 만들었다. 그는 단지 이탈리아의 역사적 상황만을 잘 풍자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를 겪는 모든 사회를 관통하는 극작가였다. 그의 연극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도전」이자 「체제 밖에 서 있는 자의 대변」으로 평가되었다. 포는 26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산지아노에서 철도원인 아버지와 농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브레라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예술을 배웠다. 무대미술에 관심을 가져 무대를 기웃거리다가 연극에 빠져들었다. 대학졸업후 소규모 카바레나 극장용 시사풍자극 레뷰(Revue)를 제작하던 그는 여배우 프랑카 라메와의 결혼을 통해 인생의 분수령을 맞게 된다. 유랑극단 단장의 딸이었던 라메와 장인은 포를 민중속으로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9년 부인과 함께 「다리오 포―프랑카 라메 극단」을 설립해 국영 RAI TV에서 촌극 「칸초니시마」를 공연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치풍자 때문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포는 68년 이탈리아공산당과 연합, 연극단체 「누오바 스케나」를 결성해 공장 체육관 등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순회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 바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포의 연극은 이탈리아 연극사의 「코메디아델아르테(Commedia Dell'arte)」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평가된다. 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비롯돼 전 유럽에 성행했던 이 민중가면극의 풍자성을 20세기에 가장 잘 되살린 인물로 꼽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탈리아 시극의 현대적 완성자」 「권위를 조소하고 짓밟힌 자의 권위를 일으켜 세우는 중세 광대의 모방자」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포의 작품은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하도록 부추기고 관객들이 극속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풍자성을 살리기 위한 사투리와 의성어가 많아 매끈한 번역이 쉽지 않은 것으로 얘기된다. 포는 뛰어난 극작가일 뿐 아니라 걸출한 마임이스트이며 풍자만화작가이자 극장경영자다. 특히 이탈리아의 19세기 1인극 「우스꽝스러운 비밀」의 연기는 일품으로 꼽힌다. 그의 최신작인 「멍청이와 악마」는 8월 메시나에서 초연됐다. 파시스트권력에 대한 고발과 뚜렷한 민중주의 시각 때문에 포는 이탈리아에서 「공격대상 1호」로 꼽히는 예술인이었다. 5월에도 납치될 뻔했다. 한편 로마에서 밀라노로 가는 차 안에서 수상소식을 들은 다리오 포는 『깜짝 놀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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