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수렁에 빠진 딜러」 美서 화제

  • 입력 1997년 2월 5일 20시 13분


[윤성훈 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일본 다이와(大和)은행 뉴욕지점의 전본드딜러 도시히데 이구치(45)가 감옥에서 집필한 자서전 「고백」을 커버스토리로 크게 보도했다. 이구치는 본드거래에서 발생한 모든 손실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미국의 금융거래법을 어기고 12년동안 이를 숨기며 고의적으로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징역 4년형과 벌금 2백60만달러(22억여원)를 선고받고 지난 95년 10월부터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타임이 어찌보면 한 동양인 딜러의 자기변호에 불과한 이 책의 발췌문을 전제하는 등 이를 지극히 이례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이구치의 인생여정에서 최근 전세계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화이트 칼라 범죄」의 전형을 발견했기 때문. 이구치는 자신의 참회록이기도 한 「고백」에서 한때 월 스트리트가를 활보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던 한 본드딜러가 어떻게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범죄자로 전락해갔는지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있다. 그가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그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부터였다. 지난 83년 다이와은행 뉴욕지점이 일정기간마다 이율이 시장의 실세금리와 연동하여 변화하는 채권인 FRN거래에서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할 때 이구치는 그곳에 「해결사」격으로 파견됐다. 그러나 처음엔 승승장구하며 회사에 많은 수익을 안겨주던 그는 한순간 악성채권을 잘못 사들였다가 5만달러(4천2백여만원)의 손실을 입은데 이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1천만달러를 투자한 미재무부 발행채권에서도 잇달아 참패를 당했다. 이후 그는 10여년 동안 크고 작은 거래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액을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3천건의 불법적인 채권거래에 손을 댔고 회사측에 1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치의 손해를 끼쳤다. 이구치는 결국 지난해 7월 이같은 사실을 회사경영진에 자백했고 당시 세계 금융시장은 「베어링 스캔들」에 이어 「다이와 스캔들」로 또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사우스웨스트 미주리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구치는 자신의 책 말미에서 『영국 베어링은행을 문닫게 한 독일인 딜러 닉 리슨이나 나와 같은 딜러들은 항상 이같은 범죄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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