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시장이 줄어드는 건설 성숙기. 그러나 노후 건물의 리모델링과 유리 교체 수요는 오히려 커지고, 한쪽에선 중국산 저가 유리의 공세도 거세다. 위기와 기회가 뒤섞인 이 전환기에 66년 외길로 ‘First’와 ‘Best’를 새겨 온 전통 강자가 ‘명가(名家)’의 반열에 올랐다.
서울 종로 그랑서울과 리움미술관, 삼성 본관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의 유리에는 한 기업의 손길이 닿아 있다. 국내 최초의 접합유리와 강화유리, 복층유리를 만들어 온 ㈜국영지앤엠이다. 1959년 문을 연 이 회사는 66년간 유리와 창호의 기술·품질 기준을 선도하며 현대, 삼성, 대우, 한화 등 대형 건설사가 손꼽는 협력사로 자리 잡았다.
국영지앤엠의 경쟁력은 ‘남보다 먼저, 남보다 낫게’라는 원칙에서 나온다. 1970년 접합유리, 1986년 강화유리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고 2002년에는 자체 연구소를 세워 기술 기업으로 체질을 바꿨다. 방화·방폭유리, 발열유리, 전자파 차단 유리, 에너지 절감형 복층유리 등 기능성 특수 유리를 잇따라 상용화했다. 공장은 다양한 제품을 최고의 품질로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건축용은 물론 가전·방탄·방화용까지 분야별로 다른 유리를 만들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 기술 컨설팅과 납기 관리, 긴밀한 소통으로 대응한다.
이 모든 도전의 중심에는 최재원 회장이 있다. 19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는 서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학자를 꿈꿨지만 결국 가업을 잇기로 했다. 1989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100년 기업’을 목표로 삼은 그는 2012년 용인 기흥 공장을 천안으로 옮기는 승부수를 던졌다.
서울 본사를 매각해 300억 원 넘게 투입한 끝에 동종 업계 최대 규모의 천안 공장을 완공하고 이를 ‘제2의 창업’이라 불렀다. “직원들마저 미쳤다고 했다”던 이 결단은 위기 속 도약의 발판이 됐다. 해외 공장을 벤치마킹해 원스톱 생산 라인과 자체 시험·검사 설비까지 갖춘 이 공장은 ‘유리 가공 3.0’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창립 50주년과 60주년에는 임직원과 협력사가 함께 중국 상하이와 칭다오로 기념 워크숍을 다녀오며 한 식구로서의 결속도 다졌다.
이런 전통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대한전문건설협회 ‘제1회 전문건설의 날’에서 ‘전문건설 명가’ 특별 포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재원 회장은 한국 판유리산업이 2020년대 들어 ‘모색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원자잿값 상승과 중국산 수입 유리의 저가 공세로 시장은 출혈경쟁에 내몰렸고 건설산업이 성숙기에 들면서 신축 프로젝트도 급감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업계의 단결’이다. 제도 개선과 산업 보호를 정부에 건의하려면 업계가 힘을 모아 미래 어젠다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국영지앤엠은 새 시장에 답을 걸고 있다. 신축이 줄어드는 대신 리모델링과 재건축·재개발, 유리 교체 사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어서다. 회사는 이미 건국대병원과 수협중앙회 리모델링, 삼성 본관 28층 업무공간 유리 교체 같은 굵직한 실적을 쌓았다. 대형 신축 무대에서도 존재감은 여전하다. 창사 이래 최고 공사 금액인 2025년 인천공항 제2터미널 확장 공사에 참여했고, 판교 NC 사옥 신축 공사를 진행 중이며, 서울 도심의 다양한 현장을 수주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건축·산업·교통시설·철도 창유리·제품 생산용에 이르는 다방면의 특허를 갖춘 포트폴리오가 이런 대응을 떠받친다. 시공 능력 평가에서도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5위권을 지키고 있다.
차세대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 외벽이 곧 발전설비가 되는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BIPV) 등에 역량을 모으며 지속가능한 건설의 새 기준을 세워 가고 있다. 경영의 바통은 3세로 넘어가는 중이다.
최재원 회장(오른쪽)과 최경승 사장. 국영지앤엠은 지난해 최재원·최경승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최경승 사장은 기술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과감한 투자와 산학협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는 “100년 기업이란 결국 시장 상황에 맞게 변신할 수 있는 기업”이라며 “유리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 만큼 이를 받아들여 시대의 방향에 맞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시절 광주에서 겪은 실패와 천안 공장의 성공을 인생의 두 고비로 꼽는 최 회장은 ‘100년 국영지앤엠’을 향한 세 번째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오랜 역사의 비결을 ‘차별성과 도전’에서 찾는 그는 “정성과 품격,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는다”며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와 글로벌한 안목으로 100년 국영지앤엠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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