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박자 훈련 후 실제 음악 들려주자 사람 지시 없어도 알아서 리듬 학습
“보상을 통한 조건화 행위로 봐야”…‘음악 능력’ 두곤 학계 보수적 접근
개-고양이-코끼리선 ‘클래식 효과’…수술 전 등 흥분 상태서 안정 찾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훈련받은 마카크원숭이는 음악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표면을 두드릴 수 있다. 개와 고양이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더 빨리 안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챗GPT·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발을 구르게 되고 잔잔한 선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의 리듬과 선율을 따라간다. 이 같은 능력이 사람에게만 가능한지는 오랜 기간 과학계 논쟁거리였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앵무새처럼 소리를 배워 흉내 내는 동물만 음악의 박자를 탈 수 있다고 여겨 왔다. 최근 이 통념에 균열이 생겼다. 훈련받은 원숭이가 음악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표면을 두드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
음악이 동물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꾸준히 연구 결과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은 개와 고양이가 더 빨리 안정됐고 코끼리도 음악을 들으며 불안한 행동을 줄였다. 동물도 음악의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것이 꾸준히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 박자 맞춰 손바닥 두드리는 원숭이
멕시코 국립자치대 연구팀은 마카크원숭이 2마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를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마카크원숭이가 음악의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표면을 두드릴 수 있는지 알아본 실험이다.
연구팀은 기본 리듬 감각을 마카크원숭이에게 심어주기 위한 훈련부터 시작했다. 마카크원숭이가 손잡이를 잡으면 4번의 박자 신호가 울리게 했다. 박자 신호가 멈춘 뒤에도 같은 간격으로 두드리면 보상을 줬다. 박자 간격은 0.5초에서 0.9초 사이에서 무작위로 주어졌으며 제시된 박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두드리면 보상이 주어졌다. 수백 차례 반복 끝에 마카크원숭이들은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능력을 익혔다.
본격적인 실험은 훈련 이후 진행했다. 연구팀은 배리 화이트의 솔(soul), 빌리 브래그의 포크송, 르네상스 작곡가 조스캥 데프레의 합창곡을 실험에 활용할 음악으로 선택했다.
음악이 흐르고 두드리기 시작 신호가 나오자 마카크원숭이들은 ‘어떤 박자로 두드리라’는 안내 없이 스스로 음악에 맞춰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 곡 모두에서 음악의 실제 템포와 거의 같은 간격을 유지했다. 연구팀이 속도를 바꾸자 마카크원숭이들도 두드림 간격을 조정했다. 심지어 연구팀이 음악 시작점을 반 박자 어긋나게 조작해도 마카크원숭이의 두드림은 음악 구조를 따라갔다. 단순히 화면이나 소리에 반응한 결과가 아니라는 증거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신경과학자 아시프 가잔파와 음악학자 개빈 스타인고는 같은 호 ‘사이언스’에 실은 논평에서 “마카크원숭이가 훈련받으면 리듬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인정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두 사람은 “관찰된 능력은 자연적 행동이 아니라 외부 보상을 통해 조건화된 행동”이라며 “자연 서식지에서는 이런 행동을 배울 기회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발견이 음악 진화에 대해 갖는 함의는 아직 충분히 이론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음악으로 안정 찾는 개와 고양이
마카크원숭이가 박자를 맞춘다면 개와 고양이는 흥미롭게도 음악을 들으며 정서적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과학계는 동물들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음악이 일종의 진정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22년 국제학술지 ‘응용 동물 행동과학’에 실린 영국 벨파스트퀸스대 연구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을 들은 개들이 더 빨리 안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반려견 60마리를 대상으로 주인과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클래식 음악, 오디오북, 아무 소리도 없는 환경 중 하나를 제공했다. 그 후 얼마나 서성거리는지, 얼마나 빨리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눕는지 비교했다. 다만 음악이 모든 스트레스 반응을 크게 줄이지는 않았다.
더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어떨까. 2016년 국제학술지 ‘고양이의학·외과학저널’에 실린 포르투갈 리스본대 수의대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차분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중성화 수술을 앞둔 고양이 12마리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클래식, 팝, 헤비메탈 음악을 각각 들려준 뒤 호흡 수와 동공 크기를 측정했다. 클래식에서는 호흡이 느려지고 동공이 작아졌다. 헤비메탈에서는 몸이 더 긴장했다.
음악의 진정 효과는 코끼리에게서도 나타났다. 2008년 국제학술지 ‘동물복지’에 실린 영국 벨파스트퀸스대 연구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날 동물원 아시아코끼리 4마리가 서성거리는 시간이 줄었다. 불안할 때 나타나는 반복 행동도 감소했다.
오원석 황금동물병원장은 “클래식 음악이 개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도구’일 뿐 치료제는 아니다”라며 “환경 관리의 한 요소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의 효과는 개마다 크게 다르고 지나치게 큰 소리나 자극적인 음악, 장시간 재생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며 “상황에 맞게 종류와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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