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 60주년 의미와 과제
“전문성과 대중성 관건은 언어
AI시대, 문화적 기억 전승 필요”
한국고전번역원
“오늘날 문화 선진국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쌓은 우리의 기록문화가 있습니다. 고전번역은 과거의 문화를 현재에 되살리는 일입니다.”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은 국가적 한문 고전번역이 본격 시작된 지 60년을 맞아 고전번역원이 13일 개최한 학술대회 ‘한국 문화와 문명의 지평’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전번역은 1965년 서울에서 학계와 예술계 원로 50명이 중심이 돼 창립한 사회단체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기점으로 본다. 민추는 일제강점기 단절의 위험을 겪은 민족의 문화를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바탕을 만들기 위해서 설립됐다. 42년 동안 한국 고전의 현대화를 표방하며 국역 및 편찬, 전산화, 국역자 양성 등 사업을 벌였고 2007년 교육부 산하에 학술연구기관 고전번역원이 출범해 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뉴노멀 시대, 고전번역 사업의 역할’을 발표하고 “지난 60년은 번역 대상을 확대하고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었지만 앞으로는 한국인의 언어 감각과 콘텐츠 유통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고려해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 언어에선 한문의 사용 빈도가 대폭 줄었지만 고전번역 결과물은 여전히 직역투와 만연체, 난해한 전문용어 사용 등 재래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장 교수는 “현재의 언어 환경에서 고전번역 사업 결과물의 언어는 ‘외계어’에 가깝다”며 “(앞으로도) ‘학술번역’이 주류를 이룬다면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 저변을 넓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관건은 언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이어 “‘민족 문화’라는 명분이 예전과 같은 힘을 지니지 못하는 가운데, 고전번역은 전문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안병걸 안동대 명예교수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한글 고전 집대성 및 번역의 필요성과 가치’(엄태웅 이승은 고려대 교수) 등 발표가 이어졌다. 엄 교수 등은 전근대, 근대, 구비 한글 고전의 수량을 총 44만여 건으로 추산한 뒤 번역과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한글 고전의 체계적 집대성과 번역,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디지털 및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문화적 기억을 기술적 형태로 계승하는 일”이라고 했다.
27일엔 ‘한국고전번역원 60년 기념식’이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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