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만 불안할까” 피할 수 없는 불안과의 불편한 동행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3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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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1)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려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마주하는 일은 필연적이다. 어떻게 하면 이 불청객 같은 불편한 감정을 잘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여행을 앞둔 직장인 김평안 씨(38·가명)는 여행을 떠올리면 설렘보단 불안함이 앞선다. 영화에서 봤던 공항 택시 납치 살인 사건이나, 한국인 관광객 실종 사건 기사가 자꾸 생각나서다. 물론 평안 씨는 일반적으로 따지면 무사히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자꾸 안 좋은 정보만 보인다. 현지에서 원인 모를 풍토병에 걸린 사람, 신용카드 결제 사기를 당한 사람, 숙소에서 빈대에게 물려 고생한 사람 등 안 좋은 여행 후기만 눈에 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희박한 일들로 인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거나,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히거나, 지나가던 차가 나를 향해 돌진하거나, 안고 있던 아기를 손에서 놓치는 등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생각들이 느닷없이 불안을 몰고 오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내 험담을 하거나 가까운 사이에서 버림 받을 것 같은 걱정 등 대인관계 문제에서도 얼마든지 불안이 유발된다.

그런데 불안감은 떨쳐버리려 노력해봐도 물에 젖은 옷처럼 잘 벗겨지지 않는다. 스스로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까. 어떤 정서보다 강렬하고 친숙한 감정인 불안과 관련한 마음의 작동 원리를 2회에 걸쳐 알아보자.

불안하기에 생존할 수 있는 아이러니
사실 불안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안을 느끼지 않아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의 삶과 불안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긴장하고 주변을 살폈기에 각종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긴장하고 주변을 살폈기에 각종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불안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과거 인간은 맹수나 자연재해와 같은 위협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해야만 했다.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잠재적 위협에 잘 대비해야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늘 긴장하고 있으니 평상시에도 마음 한 켠에 늘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불안은 불편한 감정이지만, 곧 생존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한 ‘사회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현대 사회의 인간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한 ‘사회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과거보단 물리적으로 훨씬 안전한 현대사회에서는 어떨까. 맹수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불안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사회적 생존을 위한 불안은 더해졌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불안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남들만큼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원동력 삼아 이러한 위협에 잘 적응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해 사회적 생존에 성공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불안한 사람이 더 많은 생존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불안이란 감정은 애써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왜 자꾸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흐를까

최악을 가정하고, 거기에 대비하며 생존해 오는데 익숙한 인간의 심리적 특성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으로 나타난다. 이는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위협이 될 수 있는 안 좋은 징후들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더 많이 대비하기 위한 심리적 기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불안을 일으키는 안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뇌는 다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부정, 긍정, 중립적 정보를 각각 접했을 때 우리의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봤다.

실험참가자 21명에게 부정, 긍정, 중립적 정서가 담긴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이들의 뇌파를 측정했다. 부정적 정서 사진에는 죽은 고양이, 썩어가는 소의 사체 등을 보여줬고, 긍정적 정서 사진에는 고급 스포츠카나 피자 등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여줬다. 별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중립적인 사진으로는 접시나 헤어드라이어 같은 사물을 보여줬다.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맛있는 음식 사진(아래)을 봤을 때보다,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동물 사체 사진(위)을 봤을 때 우리의 뇌는 더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동아일보 DB

이들의 뇌파는 죽은 동물 등 부정적 정서를 일으키는 사진을 볼 때 가장 빠르고 크게 요동쳤다. 뇌파의 반응 시간이 가장 빨랐다는 것은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뇌에서 빠르게 받아들여 처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긍정적 정서 사진을 볼 때는 중립적인 사진을 볼 때보다 뇌파가 요동치긴 했지만, 부정적인 정서 사진을 볼 때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안 좋은 정보를 가장 빨리, 강렬하게 받아들이기에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어떤 정서보다 빠르고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부정적 뉴스가 눈에 더 잘 띄는 이유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건·사고 뉴스가 미담 같은 긍정적 내용의 뉴스보다 더 많이 소비되는 경우도 이런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위 연구 결과를 접목해보면, 부정적 정서를 일으키는 기사 제목을 봤을 때 뇌파가 더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소로카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커뮤니케이션·정치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부정적 정보를 접했을 때 뇌파 움직임뿐 아니라 심박수 증가 등 생리적 각성도 더 많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영국, 일본, 중국, 캐나다, 브라질 등 17개국에서 115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에게 각 나라 언어로 자막이 달린 BBC 방송의 뉴스 영상 7편을 보여주면서 심박수와 피부 전도도를 기록했다. 뉴스 내용에 따라 생리적 각성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기사를 보는 동안 심박수가 증가하고, 피부 전도도 변화 반응이 가장 높아졌다. 부정적 정보에 더 높은 주의를 쏟으면서 생리적으로 각성 됐기 때문이다. 중립적인 뉴스나 긍정적인 뉴스를 보면서는 생리적으로 각성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연구팀은 “부정적 뉴스를 보면서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은 국가 간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불안해서 머리가 지끈지끈…범불안장애

불안은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지만,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과도할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DB
불안은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지만,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과도할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DB


여기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인간이 살면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적정 수준의 불안은 생존을 돕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안감이 너무 과해 일상생활에 방해받을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불안장애는 우리 국민의 평생 유병률이 9.3% 정도로 꽤 흔한 마음의 병이다. 10명 중 1명은 평생에 한 번 불안장애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인 7.7%보다 높다. 해외 연구에서는 불안장애의 평생 유병률을 15% 정도로 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불안장애는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질병으로 꼽힌다.

매번 걱정의 주제가 바뀌고, 온갖 상황에 대해 심각한 수준의 불안이 느껴진다면 불안장애 유형 가운데 하나인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를 의심해 봐야 한다. 사실 사람마다 불안을 견뎌내는 수준이 다르기에 ‘심각한 불안’이란 어느 정도인지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또 성격적으로 불안감을 잘 느껴 매사에 사소한 걱정을 끼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증상에 따라 불안장애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 따르면 범불안장애는 △매우 고통스러운 정도로 불안이 크게 느껴지고 △여러 주제에 걸쳐 불안이 유발돼 일상생활이 어려우며 △이같은 느낌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아래 6가지 증상 중 3가지 이상 해당하면 범불안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범불안장애의 증상

·초조함이나 긴장감 또는 안절부절못함
·쉽게 지치는 경향이 있음
·집중하기 어려움
·과민성(짜증)
·근육 긴장
·수면 장애

※출처: DSM-5

심한 경우엔 심장이 쿵쿵 뛰거나,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근육이 경직돼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생긴다. 불안한 생각을 하는 동안은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듯 빠르게 에너지가 소진돼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주제는 직장이나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감, 경제적 문제, 건강, 안전 등 다양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제가 수시로 바뀐다. 교통사고가 날까 무서워 아예 운전하지 못하거나, 환경오염으로 곧 지구의 종말이 올 것 같다고 느끼는 등 실제 위협보다 훨씬 과한 불안을 느낀다. 한번 시작되면 6개월 이상에서 1년 가까이 진행되기도 한다.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발병률이 2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울증과 함께 오는 경우 고통은 더욱 커진다.

여기까지 인간이 왜 이렇게 불안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불편한 감정과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동행할 수 있을까요? 다음주 기사에서는 △‘불안 스위치’ 끄는 방법 △강제로 좋은 생각을 하려할 때 부작용 △‘내 탓’할 때 더 커지는 불안 △불안이라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리기 등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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