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인터뷰] 진선규 “물 들 때 노 젓기보다, 지도 다시 봐야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3월 22일 06시 57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무명의 터널’은 이제 끝났다. 진선규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얼굴도 이름도 낯선 배우였지만 이제는 어딜 가도 스타 대접을 받는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무명의 터널’은 이제 끝났다. 진선규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얼굴도 이름도 낯선 배우였지만 이제는 어딜 가도 스타 대접을 받는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범죄도시’로 인생역전…영화계 신스틸러 진선규

“고3 때 학교 끝나고 극단 청소해가며 연기 배워
시켜주면 모두 출연…기적같이 ‘범죄도시’와 만나
남우조연상에 CF도 두 편이나…정말 꿈 같은 일
내조 고생한 아내…아이들 크면 연기 복귀 도와야죠”


스포츠동아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21일부터 사흘간 ‘연예 스타들의 희망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딛고 마침내 빛을 본 스타들의 진심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역주행의 아이콘’ EXID 하니와 뉴이스트 JR에 이어 두 번째 두 주자로 배우 진선규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지금 단 한 명의 배우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진선규(41)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그의 이름은 낯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4년간 연극과 영화에 몰두해왔지만 대중에 그 존재가 각인된 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영화 ‘범죄도시’의 성공, 연이은 남우조연상 수상이 기폭제가 됐다. 여기에 드라마틱한 수상소감이 더해져 스타 탄생을 알렸다.

길고 길었던 ‘무명’의 시간. 그래도 진선규는 한 번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특유의 담담한 성격과 뚝심이 지금의 그를 만든 밑바탕이다. 얼마 전까지 ‘인지도가 낮아 안 된다’면서 그의 캐스팅을 꺼렸던 영화 제작진의 태도도 달라졌다. ‘오디션 보지 않아도 되니 만나자’고 그를 찾는다.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하고 꼬박 10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아내와 커피광고를 찍었다. 축하한다.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광고를? 광고로 TV에? 커피 CF는 아내와 함께했고, 따로 자동차 광고도 찍었다. 늘 미안했던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촬영하고 집에 가서 둘이 손 붙잡고 기도했다.”

-연극배우인 아내가 상당히 미인이더라.

“복 받은 사람이지. 결혼 잘한 것 같지 않나? 하하! 나보다 훨씬 능력 있는 사람이다.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인데, 아이들 돌보느라….”

‘범죄도시’의 흥행은 진선규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극 중 조선족 위성락을 연기한 그는 주연인 마동석, 윤계상을 뛰어넘는 화제를 뿌렸다. 관객과 영화계가 그의 등장을 반기고 있지만, 배우가 아닌 ‘인간 진선규’를 더욱 주목받게 만든 계기는 작년 말 한 시상식에서 보여준 눈물의 수상소감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응원해준 고향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고, 같이 연극하던 아내를 얘기하면서 팔뚝으로 눈물 훔치는 모습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의 진선규(오른쪽).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키위미디어그룹
영화 ‘범죄도시’에서의 진선규(오른쪽).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키위미디어그룹

-‘범죄도시’ 전과 후로 인생이 바뀌었다.

“맞다. 연기 잘해도 ‘인지도가 없어서 역할을 줄 수 없다’는 말을 오랫동안 듣고 살았다. ‘범죄도시’ 이후엔 많은 사람이 내 존재를 인정하는, 어떤 기준이 생긴 것 같다.”

-인지도를 실감하고 있나.

“놀랄 만큼 알아본다. 그동안 수없이 영화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보는 사람의 입장은 거의 다 비슷하다.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뭐라도 시켜주면 더 좋겠고. 어쩌다 중요한 역할의 후보에 들면 가슴 졸이다가 결국 떨어지는, 그런 수순을 오래 밟았다. 이름 있는 배역을 맡은 지 2년밖에 안 됐다. 영화 ‘사냥’이 처음이다. 영화와 드라마 10여 편에 나왔지만 대부분 이름 없는 단역이었다. ‘사냥’을 하고나니 영화가 더 하고 싶었다. 그 뒤로 1년간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고, 전부 떨어졌다. 왜 떨어졌는지 물으니, 주변 반응은 한결같았다. 인지도가 없어서.”

위축될 법도 했고 좌절할 수도 있었다. 진선규는 달랐다. “인지도 때문이라고? 그럼 다행이다. 연기가 아니라 인지도가 문제라면, 나를 알리기만 하면 되잖아.”

진선규는 그때부터 다시 ‘단역’으로 돌아갔다. 한두 장면만 나오는 영화가 있어도 “시켜주면 무조건 하겠다”고 덤볐다. 그렇게 참여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남한산성’ ‘꾼’이 관객의 호평도 받았고, 촬영장에서 그의 실력을 확인한 제작진 사이에서 차츰 입소문도 퍼졌다. 그래도 오디션은 거쳐야 했다. ‘범죄도시’ 오디션에서도 처음엔 탈락했지만 어렵게 기회를 다시 잡았다. 매번 가슴 졸이며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처지. 진선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중학생 때 방황 비슷한 걸 했다. 꿈? 그런 것도 없었다. 견디기 어려웠고 힘을 키우고 싶었다. 합기도와 태권도를 시작했다. 웬걸. 운동이 정말 재미있고, 심지어 진짜 잘했다. 시골(경남 창원)에서 꾸는 꿈이랄 게 뭐가 있겠나. 운동 잘하니까 체육선생님 돼 볼까 하던 때에 한 친구를 만났다.”

-설마 친구 따라서 연기학원에?

“아니다. 친구 따라 교회에 갔다. 서울서 전학 온 친구였는데 내가 노래하는 걸 보더니 끼가 있다면서 개그맨이나 연기자를 하자더라. 둘이 방법을 찾다가, 서울 연기학원에 다니기로 하고 고3 여름방학에 혼자 짐 싸서 서울로 왔다. 그게 1995년이다.”

-지낼 곳은 있었나.

“처음엔 친구의 삼촌을 찾아갔고, 그분 소개로 서울교대 근처 고깃집에 갔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대신 이틀만 연기학원을 가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 반 동안 그렇게 지냈다. 몸에 갈비 냄새 잔뜩 밴 채로 학원에 가면 당연히 무시를 당했다. 연극영화과 준비하러 모인 예쁜 애들 틈에서 난 루저였다. 서울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연기는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학교에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애가 또 있었다. 근처 진해에 극단이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따라갔다가 내 인생이 바뀌었다. 2학기 때 학교 끝나면 밤에 극단가서 청소하면서 선배들한테 연기 좀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두 달을 배웠다.”

진선규는 반짝 연습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덜컥 합격했다. “3차에 걸친 시험을 보는데 시골에서 온 촌스러운 애가 있으니까 안쓰러운 마음에 뽑아준 것 같다”며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은 내가 서울에 있는 학원에 들어간 줄 알았다”며 웃었다.

-아내도 대학에서 만났다고.

“내가 3기, 아내가 7기다. 대학 졸업하고 극단을 만들었는데 거기서도 함께 했다. 5년 연애하다 2010년에 결혼했다. 그때 우리 삶이라는 게 하루 종일 붙어서 연습하고 공연 올리는 일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아주 자연스러웠지만 돈은 없었다.”

배우 진선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진선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대학 졸업 뒤 여러 진로에서 왜 극단을 직접 만들었나.(진선규는 2004년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를 만들어 지금껏 주축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5, 6년 붙어 다닌 친구들과 졸업하고 헤어진다니 너무 섭섭했다. 우리끼리 극단 만들어 재밌게 해보자고 시작했다. 첫 공연이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였는데 아카펠라를 접목한 시도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차이무 같은 대학로 극단 선배들이 우릴 좋게 평가해주면서 자리를 잡았다.”

-첫 영화 출연작이 딱 10년 전 작품인 ‘놈놈놈’이다.


“민망하다. 시장에서 보초 서는 역할인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나도 잘 못 찾는다. 하하!”

-지금껏 어려움은 없었나. 가장으로 경제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아르바이트 하고, 극단 지방공연 참여하면서 돈을 벌었다. 총각 땐 돈 없이도 살았고, 돈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어려워도 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벌겠지, 그런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긍정 마인드다.

“아무것도 없으니 긍정적이어야 한다. 결혼하고 가장의 책임감은 당연히 있다. 그래도 공연해서 버는 100만원을, 어떤 일을 해서 벌까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내 재능은 연기뿐이니까. 그럴 바엔 내 길을 더 깊이, 조금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아빠인가.

“아이가 6살, 3살이다. 자기 일을 멋지게 하는 아빠이고 싶다. 모두 그렇지 않나. 아이들이 조금 크면 아내의 연기활동을 도우려 한다. 지금은 장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3년 전 임대아파트 살다, 다른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혼자 계신 장모님과 합쳤다. 서로 힘들지만 그 어려움을 나누면서 힘을 모아 같이 살고 싶었다.”

진선규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강한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에 다정한 성격을 가졌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앞으로 액션배우로서 보여줄 매력이 상당해 보였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는 얼굴은 의외로 ‘꿀피부’였다.

-고향에 있는 가족도, 자랑스러워하겠다.

“어머님은 늘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여야 한다고, 남부터 먼저 챙기라고 하신다. 3남매 중 장남인데 자랑스러운 건 오히려 동생들이다. 경상도는 좀 보수적이어서 장남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죄송하다. 남동생은 공부를 잘해서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 우리가 대학에 가는 바람에 여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고. 미안하고 고맙지. 서울 살 때 월세도 동생들이 조금씩 도왔다. 덕분에 내가 있다. 이제 내 차례이고 기분 좋게 하고 있다. 동생들이 사인 보내라고 해서 어제도 30장 택배로 보냈다. 하하!”

배우 진선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진선규.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나는 묵묵히 해왔을 거다. 앞으로 비슷할 테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앞으로 오디션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려 한다.”

영화의 흥행과 수상, MBC ‘무한도전’ 등 예능 출연에 광고 모델 발탁까지 이어지면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한다. 하지만 진선규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게 아니라, 물이 들어올 땐 지도를 다시 펴서 내가 갈 길을 점검해야 한다. 급하게 노 젓다간 배가 어디로 갈지 모르지 않나.”

진선규는 26일 새 영화 ‘극한직업’ 촬영을 시작한다. 촬영을 마친 ‘사바하’, ‘암수살인’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진선규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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