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감독 “술자리 낙지안주 같은 영화였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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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만에 ‘화이’로 돌아온 장준환 감독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에 장편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 그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무섭거나 잔인한 영화를 못 본다. ‘화이’는 괴물로 변해 가는 아이의 마음 속 심연을 파고들다 보니 화면이 ‘세졌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에 장편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 그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무섭거나 잔인한 영화를 못 본다. ‘화이’는 괴물로 변해 가는 아이의 마음 속 심연을 파고들다 보니 화면이 ‘세졌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제가 좀 느린 사람이에요. 뭘 하나를 잡으면 착착착 가지 못하고 조몰락조몰락하느라 오래 걸려요.”

장준환 감독(43)이 2003년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에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10월 9일 개봉)로 돌아온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준비하던 영화가 2편 정도 엎어지고(제작이 무산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하니까 10년이 갔다”고 했다.

그의 장편 필모그래피는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딱 2줄이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이 된 ‘지구를 지켜라’는 대단했다. 모스크바영화제 감독상과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의 신인 감독상을 가져다 줬다. 기괴하고, 무언가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 영화에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그래서 촉망받던 신인 감독의 10년 공백이 의아했다.

‘지구를 지켜라’의 부담도 있었나? “당연히 (부담이) 있었죠. 칭찬을 받고 보니까 ‘차기 작은 좀 더 새로워야 하나’라는 압박감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더 깊어져야 할 텐데…’라는 생각 속에서 살았죠.”

‘화이…’는 그의 10년 공백이 무색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나다. 캐릭터들은 숫돌에 간 칼처럼 날이 서 있고, 인물의 심리 묘사는 가슴을 짓누를 만큼 강렬하다. 어릴 적 유괴돼 5명의 아빠들 사이에서 자란 17세 화이(여진구). 그는 석태(김윤석)를 비롯한 5명의 범죄자 아빠 사이에서 괴물로 길러졌지만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다.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건넸다. “아내(문소리)가 임신했을 때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블랙 스완’을 보러 갔어요. 배 속 아이만 아니었으면 서로 술 한잔하며 얘기하고 싶은 영화였어요. ‘화이’가 그런 영화였으면 해요. 술자리에서 살아 꿈틀대는 낙지 안주 같은….”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만큼 신선하지는 않다”고 꼬집어 봤다. “이번 기회에 편견을 풀었으면 해요. 저는 ‘지구를 지켜라’ 같은 SF(공상과학) 판타지적인 상상을 즐기지만 이야기의 기본을 더 중시해요. 자극적인 위트만으로 승부하지는 않아요. 이번 영화는 정공법, 클래식한 느낌으로 만들려 했어요. 스타일이 앞서면 영화의 무게감이 훼손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 강렬한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안의 악마성은 예술의 주제였죠. 또 사춘기에 겪는 아버지에 대한 극복의 문제도 그렇고요. 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를 고른 이유가 쉽게 읽히고 큰 파도를 서핑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어요. 다양한 레이어(층)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배우의 연기도 좋다. 특히 극중 설정과 비슷한 나이인 16세 여진구의 연기는 성인 배우들 사이에서도 빛난다. “진구에게 ‘캐릭터에 묵직하게 부닥쳐야지 꼼수를 쓰면 들통이 날 것’이라고 했어요. 아주 묵직한 이야기여서 본질에 들어가려면 몸으로 부딪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다고 했죠. 이런 의도를 잘 담아 내면 재밌으면서도 묵직하고, 신나면서도 강렬한 영화가 된다고 봤어요.”

문소리도 최근 개봉한 ‘스파이’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영화 현장을 서로 잘 알아서요. 함께 하다가는 엄청 싸우지 않을까요. 탐나는 배우이기도 하니까 아무도 우리를 안 찾아줄 때 쯤 부부 영화를 한 편 하는 것도….”(웃음)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장준환 감독#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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