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윤여정, ‘칸의 맛’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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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7시 00분


‘바람난 가족’과 ‘하녀’에 이어 ‘돈의 맛’으로 임상수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윤여정.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바람난 가족’과 ‘하녀’에 이어 ‘돈의 맛’으로 임상수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윤여정.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투 상수’ 작품으로 2년 만에 다시 레드카펫

경쟁부문에 동시 진출…칸 단골 여배우 예약
드라마 2편 출연…살인 스케줄에도 20일 출국
“이 나이에 베드신? 중년여성들의 로망이죠”


“와이 미(Why Me)? 내가 왜?”

배우 윤여정은 영화 ‘돈의 맛’(감독 임상수·제작 휨므빠말)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고 연출자인 임상수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임 감독과는 ‘바람난 가족’과 ‘하녀’에 이어 세 번째 만남. “임상수의 열렬한 팬”이라지만 ‘돈의 맛’ 시나리오에서는 “장면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윤여정은 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는 사람도 불쾌할 텐데 꼭 찍어야 하느냐”고 묻는 여배우에게 감독은 “그러라고 일부러 쓴 장면이다”고 했다. “하여튼 임상수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니까. 왜 내가 해야 해?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가?!”

윤여정이 임 감독에게 되물은 장면은 이미 공개된 ‘돈의 맛’의 파격 포스터에서 예고한 베드신. 극중 재벌가 사모님 윤여정이 집안일을 돌보는 젊은 비서 김강우의 몸을 탐하는 장면이다.

“중년 여자들이 ‘뭐야! 저거’ 하면서도 ‘내게도 저런 일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거라고, 임 감독이 말하더라고. 내가 반론을 제기해서 받아들여진 적이 없어. 늘 그가 막을 열고 그가 막을 내리니까.”

2010년 ‘하녀’로 칸 국제영화제에 나선 60대 여배우. 2년 뒤 ‘돈의 맛’으로 다시 칸으로 향하는 윤여정을 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죽지 못해 노구를 이끌고 (드라마 두 편을)찍고 있다”는 윤여정은 시청률 1위 KBS 2TV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MBC ‘더킹 투하츠’까지 ‘살인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

● ‘돈의 맛’과 ‘다른 나라에서’로 칸 레드카펫

20일 칸으로 향하는 윤여정은 27일까지 머물며 두 편의 영화로 레드카펫을 밟는다. ‘돈의 맛’과 함께 경쟁부문에 진출한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를 갖고서다.

윤여정은 “칸은 감독을 추앙하는 영화제니까 상을 받는다면 감독의 몫이다”면서도 2년 전 칸에서 겪은 다양한 일화를 공개하며 세계적인 영화의 축제에 다시 서는 소감을 밝혔다.

“‘하녀’ 때는 (전)도연이랑 칸 뒷골목 노천카페에 앉아 낮부터 샴페인을 세 병이나 마셨어. 파티에서 만난 팀 버튼 감독이 내게 ‘임상수 영화 좋다’고 칭찬하길래 상받을 줄 알았고. 하하!”

베트남 여배우와 일화도 또렷하다. 아침식사를 하던 윤여정에게 베트남 여배우가 다가와 “TV에서 많이 봤다”며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윤여정은 “내 옛날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팠다”고 돌이켰다.

“나는 47년생이고 한국전쟁 때 피난 가는 기억의 한 부분이 남아 있다. 1960년대 해외 나갈 때 여권 들춰보는 입국 심사의 위압감도 생각나지. 베트남 여배우가 그때 내 모습 같았어. 한국영화가, 그것도 두 편씩이나 칸에 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고.”

‘바람난 가족’과 ‘하녀’에 이어 ‘돈의 맛’으로 임상수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윤여정.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바람난 가족’과 ‘하녀’에 이어 ‘돈의 맛’으로 임상수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윤여정.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잠깐 나오는 건데 너무 그 쪽으로 몰지 마”

17일 개봉하는 ‘돈의 맛’은 재벌가 사람들의 추악한 욕망과 탐욕을 그렸다. 극중 윤여정은 막강한 집안에서 태어나 또 다른 재벌가를 이룬 백금옥이란 인물. “임상수는 늘 불편한 진실을 들추지 않느냐”는 윤여정은 “사람들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파헤치는, 센 대사와 비아냥 있는 영화”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문제의 베드신. 윤여정은 “너무 그 쪽으로 몰지 마”라며 선을 그었지만 김강우와 촬영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왜 나를 불쾌함의 상징으로 만들어? 하지만 이해했다. 백금옥은 태어날 때부터 돈 있는 여자, 돈에 중독됐는지도 모르는 사람. 자본주의니까 돈이 권력이고 만능인데, 백금옥은 그 애(김강우)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잠깐, 순간이지. 백금옥의 파워 또는 만행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김강우에 대한 평가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참 성실하고 최선으로 진지하더라고. 그런데 운동을 너무 (많이)해. 이 나라는 좀 있으면 다들 벗고 다닐 건지, 하하! 강우는 계속 굶고 운동하는데 난 계속 먹었지.”

윤여정은 임상수 감독을 ‘진정한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적 감독’으로 불렀다.

“내가 출연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 속 식모나 ‘바람난 가족’의 늙은 엄마는 그 시대에 없던 진일보한 여성상 같아. ‘돈의 맛’의 딸 김효진도 재벌가 여자로는 앞서가는 쿨한 면이 있지. 임상수는 현존하는 캐릭터를 10년 앞으로 나가게 해주는 페미니스트야!”

윤여정은 “새로운 것에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백금옥 역을 수락할 중년 여배우가 누가 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꿈을 꾼다고 이뤄지지 않잖아. 늙은 남자배우들의 ‘멜로하고 싶다’는 말이 너무 듣기 싫어.(웃음) 난 지금껏 하지 않았던 역할은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해.”

드라마와 영화 속 배우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TV에서 보는 윤여정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배우의 ‘극과 극’이 궁금한 사람에게 바로 그 윤여정의 ‘돈의 맛’을 권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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