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 1편(2008년)은 슈퍼히어로 만화와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의 이상적 결합을 보여준 영화였다. 다른 어떤 슈퍼히어로 캐릭터보다도 영화화가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던 대상. 수많은 부품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금속 갑옷은 가죽 코스튬을 입고 주먹에 칼날을 붙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변신로봇을 블록버스터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된 할리우드는 이 꿈 같은 갑옷을 사실처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세계 시장에서 5억7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대박을 칠’수 있었던 것도 ‘우와, 저걸 영화로 만들다니!’라는 신기함 덕이 컸다. 해머를 쥐고 아이언 맨 슈트 부품을 하나하나 두들겨 만드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흥미진진한 표정은 그대로 관객의 표정이었다.
29일 개봉한 ‘아이언 맨 2’는 그러나 1편과 달리 신기함에 기댈 수 없다. 2편을 보려고 극장을 찾는 관객 대부분은 갑옷 테크놀로지의 시각적 쾌감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더 강해지지 않았다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 2편의 홍보 카피는 더 멋지고 박력 있는 아이언 맨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전전긍긍했을 제작진의 고민을 짐작하게 한다.
더 강해진 건 맞다. 원작 만화의 조력자 캐릭터인 ‘워 머신’을 파트너로 영입한 2편은 원맨쇼였던 1편과 달리 수십 대의 로봇들과 펼치는 대규모 육박전을 보여준다. 장풍처럼 발사하는 레이저포뿐이었던 아이언 맨의 무기도 다채롭게 업그레이드 됐다. 하지만 스토리의 짜임새와 캐릭터의 매력은 강화된 화력만큼 약해졌다.
쾌활한 행동거지 뒤에 단선적이나마 내면의 고독을 슬쩍슬쩍 내비치며 ‘귀엽다’는 호감을 얻었던 1편의 스타크는 간 곳 없다. 첫 장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엑스포에 착륙해 ‘불사조’를 들먹이며 쏟아내는 자화자찬 연설은 참고 들어주기 어렵다. “정부를 대신해 세계 평화를 이뤄냈다”고 큰소리치다 예상된 곤경에 처하지만,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다. 아이언 맨 1편과 같은 해에 ‘더 레슬러’로 재기했던 미키 루크가 맡은 악당 ‘위플래시’는 기대만큼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한다. 약물 중독과 방탕한 사생활로 긴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비슷한 시기에 재기한 닮은 꼴 배우들의 조우가 자아낸 찡한 분위기? 전혀 없다. 그냥 1편보다 더 쨍쨍한 쇳소리를 내며 세게 치고받을 뿐이다. 비서로 출연한 존 파브로 감독은 아무래도 연출보다는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남성 관객에게는 그래도 희소식이 있다. 2편에서 아이언 맨 갑옷보다 더 큰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것은 슈퍼히어로 감시조직 ‘실드’의 요원 ‘블랙 위도우’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이다. 몸에 착 붙는 검정 코스튬보다 드레스나 정장을 입은 모습이 더 자극적이다. 영화 중반 스타크와 비서 페퍼포츠(기네스 펠트로)의 대화 장면 배경에 엑스트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요한슨의 전신이 뜬금없이 길게 잡힌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슈퍼히어로 이야기의 허황됨을 자책하는 ‘킥 애스’ 같은 변종 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마당에 수십 년 묵은 히어로 단체 ‘어벤저스’ 역사를 되짚는 아이언 맨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슈퍼히어로 마니아라면 슬쩍 장난처럼 지나가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등에서 소소한 재미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군수업체 관계자나 무기 마니아에게도 추천한다. 보너스 영상은 없으니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혹시나 하며 자리를 지키는 수고는 피할 것.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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