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 2009년 드라마 결산 심사위원 좌담회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7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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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₂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연기자 결과에 대해 최종 심사위원단인 윤석호 PD,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김재범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 부장이 16일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윤석호 PD는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를 비롯해 '가을동화', '여름향기' 등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든 주인공. 윤석진 교수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드라마 평론가로 유명하다.

각 위원들은 심사 총평과 함께 KBS MBC SBS 방송 3사가 올 한 해 방영한 드라마 가운데 화제작을 분석했다. 또 2009년 한국 드라마계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눴다.

드라마 전문가 세 사람이 2009년 TV드라마와 연기자를 냉철하게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봤다. (※ △호=윤석호 PD △진=윤석진 교수 △범=김재범 부장으로 표기)

▶"최근엔 캐릭터가 강해져...착하고 부드러운 주인공은 밋밋해"


△범=올 한 해 최고의 연기자 선정을 위해 심사위원으로 활약해 주신 점 감사하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어떤 특징이 돋보였는지 듣고 싶다.

△진='선덕여왕'과 '아이리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는 썩 흥미롭게 시청한 드라마가 없어서 아쉽다.

올해 방영된 작품 중에는 유난히 강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았다. '선덕여왕'의 미실이나 '아이리스'의 김선화, '스타일'의 박 기자가 대표적 사례다.

성격이 강한 여성 캐릭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자기 목소리가 강하면서 전문성도 뛰어난 여성들이 전면에 부각됐다.

△호=예전엔 여배우들이 주로 여성성이 강조된 역할을 맡았다. 내가 제작한 '겨울연가'에서 최지우가 연기한 정유진도 그랬다. 남자의 시선에서 여자를 그렸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엔 캐릭터가 강해지고 있다. 착하고 부드러운 주인공은 밋밋하게 느끼는 경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강하면서도 사랑에는 진심을 담는 여자 주인공이 많아졌고 남자 주인공도 까칠하면서 순애보를 펼치는 인물이 많다.

‘O2 최드연’ 심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전문가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O2 최드연’ 심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전문가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범=두 분 말씀대로 편하게 말해 '독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독해지는 캐릭터는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환경 탓인지도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론 세태 반영이 아닌가 싶다.

△진=동의한다. 하지만 시청률을 많이 의식하게 된 점도 영향을 준다. 강하고 독한 설정으로 시청률을 올리려는 것이다. 두 가지가 맞물려 강한 여자, 까칠한 남자, 독한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범=인터넷이 가져온 온라인 문화가 드라마 제작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요즘은 시청자 반응이 실시간으로 나온다. 캐릭터가 얼마나 충격을 주는지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좋다', '싫다'의 차원에서 이제는 '관심을 끄느냐' 여부가 중요해졌다.

▶윤석호 " 미실은 고현정 본인이 새롭게 창조한 이미지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아"

이제 O₂ 최고의 연기자 선정 결과에 대해 얘기해 보자. 최종적으로 '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이 뽑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호=앞서 말한 대로 '선덕여왕' 작가가 만든 캐릭터 미실은 강한 여자였다. 이 점이 많이 부각됐다. 그런데 고현정이라는 배우가 그 강한 점을 자기 식으로 흡수해 독특한 매력으로 팜파탈 연기를 해낸 것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비결이라 생각한다.

고현정은 '선덕여왕'에서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눈썹 움직임이나 미묘한 미소 등 힘있는 표정들이 좋았다. 그전에 볼 수 없었던 면을 이번 사극에서 많이 보여줬다.

나는 연출자이기 때문에 늘 배우를 본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미실은 고현정 본인이 새롭게 창조한 이미지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한다. '선덕여왕'도 고현정 덕을 많이 봤다.

△진=동감한다. 개인적으로 미실 역의 고현정에 대한 심사평을 '빙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쓸 정도로 흡입됐다. 고현정이 보이지 않고 미실이 보인 것은 연기자의 내공이 출중했던 결과다.

△범=고현정이 예전 작품에선 2%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전에는 공중에 뜬 채로 연기했다면 이번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발을 땅에 디뎠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과거 팜파탈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호=악역은 보통 눈매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비웃는 미소에도 전형적인 선이 있다. 고현정은 그런 선을 줄였다. 굵은 선이 아니라 가늘지만 그래서 더 충격이 큰 선이다. 미실은 장희빈 같은 기존 사극의 악녀들과는 달랐다.

△진=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캐릭터와 역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냈다. 고현정은 MBC '여우야 뭐하니'에선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며 연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미실 연기는 카메라에서 벗어나 인물 안에서 '놀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범=배우에겐 운도 중요하다. 고현정이 덕만 역을 맡았다면 본인의 얼굴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윤석진 "'아이리스'를 4회까지는 재밌게 봤는데 그 이후엔 불편했다"

이제 고현정과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오른 KBS '아이리스'의 이병헌에 대해 얘기해 보자. 윤석호 감독은 이병헌과 함께 작업한 적도 있는데 이번 김현준 연기를 어떻게 봤나.

△호=1992년에 이병헌의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이라는 청춘물을 같이 찍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역량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고 '아이리스'처럼 스케일이 큰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가 노련해지고 경지에 올라 폭발하는 느낌이다.

터프함과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장난기 있고 귀여우며 때로는 슬픈 표정을 짓는 등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한 배우가 강한 힘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어색하고 느끼하게 보일 수 있는데 이병헌은 달랐다.

△진='아이리스'를 4회까지는 재밌게 봤는데 그 이후엔 불편했다. 영화 제작자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기존 드라마 문법과 많이 달랐다.

그래도 이병헌의 연기는 매력적이고 돋보였다. 이병헌이 아니라면 느끼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사실 이병헌은 뭔가 특징 없이 무난한 느낌의 배우였다. '겨울연가'하면 배용준이 떠오르는데 이병헌은 그런 식의 대표작을 꼽기 어려웠다. 이번에 '아이리스'는 이병헌만의 색깔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그의 대표작이 됐다.

연기를 잘 하는데도 너무 계산한 것이 티가 나면 재미가 떨어진다. 박신양이나 김희애가 그렇다. '아이리스'의 이병헌도 그런 계산을 한 것 같지만 잘 드러나지 않도록 솜씨 있게 처리했다. 헐리우드 영화를 경험하면서 '우물 안 연기'에서 벗어나고 매뉴얼적인 연기를 지워버리게 된 것 아닌가 싶다.

△호=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미국에서 고생 많았다고 들었는데 '아이리스'에선 자신감과 함께 배우로서의 열정도 전해졌다. 시청자들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범=두 분 말씀대로 이병헌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최근 불미스런 스캔들에 휘말려 좀 안타깝다. 연기자를 볼 때 그 사람의 연기만 봐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실제 삶도 투영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호='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히트한 이후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드라마를 보면서 활력을 되찾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배용준이 아닌 준상이를 보면서 외로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보살펴줄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연예인은 대중의 감성과 함께 호흡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불미스런 일이 시청자, 팬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실제 삶에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범=나는 반대로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다. 연기자의 일상과 연기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서도 배우들의 삶이 우아한 것만은 아니다. 관객들이 앤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저 여자 지금 남자를 몇 번째 갈아치웠나'라고 따지진 않는다.

▶김재범 "김소연 김남길 모두 전사 이미지를 벗어나도 잘 할 수 있을지가 중요"

이제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선덕여왕'에서 고현정, '아이리스'에서 이병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요원, 김남길, 김소연도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두 작품에서 좋은 연기자가 여럿 나온 이유는 뭘까.

△진=김남길, 김소연은 예전에 보여준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레 주목받았다. 작품 자체의 스케일보다 배우들의 역량과 변신이 시청자에게 인상을 남겼다.

김소연은 '아이리스'의 김선화를 통해 지적이고 세련된 기존의 느낌에서 강렬한 여전사로 변신했다. 또 사랑으로 고뇌하는 연기도 소화했다.

김남길도 이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엔 그냥 무난한 연기자였다. 하지만 비담으로 여러 얼굴을 보여줬고 시청자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배우들의 선택, 연기 변신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호=김소연은 아역배우로 출연할 때부터 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두드러진 연기자는 아니었다. 연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세련미도 부족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는데 '아이리스'의 여전사 역할을 통해 배우로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김소연은 이병헌과 김태희 뒤에서 말 없이 쭈그리고 앉은 장면에서도 표정 하나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김남길도 영화에서 봐 왔지만 아직 신인인데 비담을 자신만만하게 연기했다. 첫 등장부터 매력적이었다. 캐릭터 자체도 좋았고 배우의 능력도 탁월했다. 차기작에서도 지금처럼 좋은 결과를 낼지 관심이 간다.

△범=김소연도 마찬가지 아닐까. 두 사람 모두 비담, 여전사를 벗어나면 잘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4위에 오른 이요원은 어떤가. 고현정, 김남길, 유승호 등 주목받는 배우들이 '선덕여왕'에 대거 등장하면서 이요원이 여왕 역할인데 가엽단 생각마저 들었다.

△진=대중들에게 선덕여왕 이미지 자체가 고정돼 이요원의 연기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비담, 미실은 상상력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덕여왕은 어려운 역할이다. 연기자도 괴로웠을 것이다. (계속)
[O2] 2009년 드라마 결산 심사위원 좌담회②

정리=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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