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온 심해 잠수부 ‘머구리’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3년전 가족과 탈북한 박명호 씨의 생활 담아

‘머구리’들은 새벽마다 어김없이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인 머구리란 두꺼운 가죽 작업복, 묵직한 청동 투구에 납덩어리까지 총 50kg에 이르는 장비를 짊어지고 해저를 누비는 ‘심해 잠수부’를 일컫는 말이다. 한 번 들어가면 문어, 해삼, 멍게를 찾아 몇 시간이고 바다 속에서 작업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MBC가 28일 오후 10시 55분에 방영하는 ‘MBC 스페셜-북에서 온 머구리’(사진)는 2006년 5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뒤 강원 고성에서 머구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박명호 씨(44)의 생활을 담았다. 고성군 대진항은 북한을 코앞에 둔 어로 한계선이라 1년 중 4∼11월만 조업이 허락되는 황금어장이다.

박 씨는 북한에서 군사대학을 졸업한 뒤 20년간 직업 공군으로 살았다. 머구리 일도 북한에서 군에 있을 때 배웠다.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하는데, 사병들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간부였던 그가 직접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하는 과정에서도 ‘3면이 바다인 남한에서 머구리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큰 힘을 줬다. 그는 전국을 헤맨 끝에 전통 머구리가 남아 있는 고성군 대진항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자원 고갈로 인해 머구리배가 10척에서 6척으로 줄어든 상황이지만 박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40kg이 넘는 대왕문어도 어렵지 않게 잡는다.

처음엔 탈북자라는 이유로 함께 일하기를 꺼리고 배타적이었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성실한 모습에 반해 마음의 문을 열고 인정해줬다. 탈북 때 이불에 된장독까지 싣고 왔던 억척스러운 아내와 함께 남한에 정착한 지 3년 만인 올여름, 박 씨는 번듯한 집도 장만했다. 박 씨는 생업 수단으로 배 한 척을 마련하겠다는 새 꿈을 꾸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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