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그룹 ‘2Ne1’ 탄생의 비밀

  • 입력 2009년 5월 12일 20시 17분


여성그룹 '2Ne1' 탄생의 비밀- 양현석 YG대표의 역발상 마케팅

"2NE1?"

대중가요에 무관심한 사람은 어떻게 읽어야할지 난감한 이름이다. '투애니원'이라고 읽는 이 그룹은 신생 4인조 여성 그룹. 공중파 TV 데뷔를 하기 전인데도 이들의 타이틀곡 '파이어'는 음원이 공개된 지 단 이틀 만에 도시락, 벅스, 엠넷 등 각종음원 사이트 1위를 석권했다. 뮤직비디오는 3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들을 만들어낸 '산파'는 SM, JYP와 함께 국내 3대 레이블로 인정받는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39)다. '2NE1'의 화려한 탄생은 양 대표의 치밀하고도 과감한 마케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 대표는 남성그룹 '빅뱅'에 이어 '2NE1'으로 침체기 한류산업을 떠받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귀재로 떠올랐다. 그의 마케팅은 어떤 점이 남달랐던 것일까.

● 기존 장점을 활용한 '플러스 알파' 작전

남성 5인조 그룹 '빅뱅'은 1998년 설립된 YG 엔터테인먼트의 최대 히트작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인 양 대표는 간간히 히트 가수를 배출해왔으나 보아(SM)나 비(JYP)처럼 대형 가수를 키우진 못했다. 때문에 '빅뱅'의 성공은 '고진감래'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극적인 결과였다.

빅뱅을 범상치 않은 '청춘의 아이돌'로 각인시킨 대표적 활동은 '출판 마케팅'이다. 20대 초반에 불과한 이들의 인생유전을 청소년 대상 자기계발서인 '너를 향해 소리쳐'로 펴내며 인기 그룹 '빅뱅'을 '스토리를 지닌 인생역전'의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빅뱅'은 대성공했지만 문제는 YG 엔터테인먼트에 여성그룹 라인이 취약하다는 것. 가요계 정상을 정복하려면 '소녀시대'(SM), '원더걸스'(JYP)처럼 여성그룹 라인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YG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부터 '여성빅뱅'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을 흘리기 시작했다.

● 보다 더 어려 보이기

애당초 히트작에 '묻어가기 전략'은 부정적 효과가 있을 공산이 컸다.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는 반면 신제품은 그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

그러나 '여성빅뱅'의 선전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어려 보이는 효과'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심지어 '빅뱅'만 해도 멤버들 나이가 대개 만 20세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요시장 전체가 그만큼 어려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2NE1'의 리더인 박봄(25)과 박산다라(25)의 나이다. 그러나 20세 초반인 '빅뱅'의 여성 버전이라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은 덕분에 '빅뱅'과 나이가 유사할 것이라는 착시효과와 '여성 아이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다.

● 전사적 역량 모아내기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내 경쟁을 통해 출시되는 신제품이 적지 않다. 이 경우 문제는 내부 긴장감이 높아져도 전사적 역량을 모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심지어 같은 회사 내에서 경쟁 팀에게 이미지를 빌려주는 것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2NE1'은 YG 엔터테인먼트의 거의 전 멤버가 출동해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고양시킨 모범사례다.

우선 데뷔 싱글인 '파이어'는 YG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첫 히트가수인 '원타임(1TYM)'출신의 테디가 프로듀서로 나섰다. 안무는 '빅뱅'의 안무가인 션과 에이미가 맡았다. 심지어 '빅뱅'의 리더 권지용이 프로듀싱에 참여한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그는 실제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 '역량 결집'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최근 LG싸이언의 신제품인 '롤리팝' 광고에 '2NE1'이 '빅뱅'과 동반 출연한 것. 이 광고 출연으로 이전까지 나돌던 '여성빅뱅'이라는 소문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신인그룹을 '빅뱅'과 동일한 레벨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 음악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

지난달 말,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는 시청자들의 신청곡을 소개하면서 "아, '빅뱅'의 신곡인 'OOO' 신청곡이 많네요. 그런데 이 곡은 방송금지곡이기 때문에 양해바랍니다"하고 말했다. 이 곡은 '롤리팝'이라는 노래로 제품명과 노래명이 일치하는 바람에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방송이 금지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인그룹을 가요프로그램이 아닌 CF에 출연시킨 것을 두고 가요계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빅뱅'은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통한다. 그들이 출연한 광고는 주목도가 높고 젊은층의 충성도가 높아 매출과의 연계도 순조롭다. 문제는 광고 활동이 대부분 가수의 음악성에 대한 평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롤리팝 광고는 기존 뮤직비디오 형식을 빌려왔으며 '2NE1'이 '빅뱅'에게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방식을 통해 가수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고도 인지도 높이기,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 해외인재 영입을 통한 외연 확대

최근 필리핀 방송사들은 '2NE1'의 산다라 박을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2004년 필리핀 ABC-CBN 공채를 통해 데뷔한 그녀는 필리핀에서는 널리 알려진 대중스타다. '2NE1'의 필리핀 시장 공략이 수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산다라 박의 어머니가 딸을 양 대표에게 데려가 스타로 키워달라고 간청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이미지는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점 때문에 YG 엔터테인먼트의 산다라 박 영입 결정은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요계엔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신인만이 대성할 수 있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YG엔터테인먼트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인재 영입이라는 역발상을 통해 시장을 확장하고 신비화 전략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YG엔터테인먼트와 양 대표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그가 과거 휘성이나 '빅마마' 등 음악성이 강한 가수들을 주로 키워온 '아티스트' 레이블 출신이라 '빅뱅' 같은 사업주의 전략에 대한 팬들의 비난이 그나마 덜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2NE1'의 성공적 출범도 '빅뱅' 효과에 편승한 일시적 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NE1'은 17일 데뷔 무대를 갖는다. 이들은 어떤 라이브 음악을 선보이고, 방송을 통해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거품 여부가 입증될 것으로 보인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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