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미드 보니? 난 영드 본다”

  • 입력 2009년 1월 28일 02시 59분


《‘미드(미국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 영드(영국 드라마)가 몰려온다.’ 최근 영국 드라마가 국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미드에 비하면 아직 국내에 소개된 드라마는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터넷에 ‘영드 폐인’(영국 드라마에 빠져 사는 사람)이란 말이 생길 만큼 마니아가 늘고 있다. 영드의 매력은 숀 코널리나 휴 그랜트가 떠오르는 고풍스러운 억양과 말투뿐만이 아니다. “독특한 고급문화와 하급문화가 뒤섞여 생활에 녹아든 규칙과 균형의 문화”(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가 드라마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국내에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인 영국과 미국 드라마 가운데 공상과학(SF), 하이틴 드라마, 범죄 수사극 등 3개 장르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비교 분석해봤다.》

“휴 그랜트 같은 고풍스러운 말투-문화코드에 매료”

‘스킨스’ ‘닥터후’ 등 입소문 타고 마니아 사이서 인기

○ 英 ‘스킨스’ vs 美 ‘가십 걸’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에서 지난해 시즌1에 이어 올해 3월 시즌2를 방영할 예정인 ‘가십 걸’과 지난해 ‘XTM’에서 시즌1, 2가 방영된 뒤 올해 시즌3 방영을 앞둔 ‘스킨스’는 현지에서도 인기 높은 10대 청춘 드라마다.

둘 다 10대의 성장통과 사랑을 그리지만 색깔은 구분된다. 뉴욕 맨해튼 사립고교생들을 그린 가십 걸은 미국의 상류층 자제답게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최근 한국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미국판이라고 할 만큼 호화로운 생활상을 보여준다.

상류층 10대 청춘물은 미드의 단골 소재다. 국내에도 방영됐던 ‘베버리힐즈의 아이들’(원제 베벌리힐스 90210)이나 미샤 바턴이란 청춘스타를 탄생시켰던 ‘디 오시(The O.C.)’ 등도 비슷하다. 나이만 고등학생이지 행동은 성인과 다름없는 ‘청춘 연애드라마’다. 일반인에겐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스킨스는 영국 브리스틀의 한 평범한 고등학교가 무대. 겉과 속이 다른 모범생, 지저분한 궁상, 약물 중독에 빠진 정신질환자 등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는’ 1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사에 ‘f××king’과 욕설이 빠지지 않을 정도. 영국 매스컴도 “우리 10대가 이 정도냐”고 한탄했다는 드라마다.

이런 적나라한 현실 묘사는 영국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앵그리 영맨(Angry Youngman)’ 문화의 영향이 크다. 김광옥 교수의 책 ‘영국 대중문화의 이해’(미디어24)에 따르면 20세기 중후반 영국은 기존 주류문화에 반발해 하층문화에서 리얼리즘을 획득하려는 문화가 득세했다. 이때 확립된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정확한 인물 묘사를 중시하는 사실주의 전통”은 이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 英 ‘닥터 후’ vs 美 ‘프린지’

2월 9일부터 ‘폭스채널’에서 시즌3가 방영되는 ‘닥터 후’와 ‘캐치 온’이 28일부터 내보내는 ‘프린지’는 같은 SF 계열이지만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2005년 첫 시즌, BBC 평균 시청률의 두 배를 기록했다는 닥터 후는 영국 ‘B급 SF’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탈을 둘러쓴 게 확연히 티가 나는 외계인, 로봇 태권V의 ‘깡통 로봇’을 닮은 엉성한 로봇, 심지어 시간여행까지 가능한 우주선은 영국 공중전화박스다.

내용도 황당하다. 폼페이 화산 폭발이 외계인의 에너지원 갈취로 지연되고,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외계 괴물이 세운 거처다. 심지어 영국 왕실이 ‘늑대인간’의 후예임을 암시하는 대목도 나온다. 근데 반응은 “하긴, 하는 거 보면 그럴 수도…”이다.

폭스채널의 이현아 편성기획팀장은 “영국에서는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래로 SF와 B급 코미디가 결합된 작품이 자주 나왔다”면서 “장르는 SF지만 개그를 가미해 현실을 풍자하는 하이 코미디로 승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평균 1000만 명의 시청자가 본다는 ‘프린지’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초현실적인 사건을 파헤치며 그 뒤에 숨은 거대 세력과 맞닥뜨리는 내용. 포맷만 봐도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엑스파일’을 연상시킨다.

○ 영국과 미국의 ‘라이프 온 마스’

‘XTM’에서 올해 상반기 방영 예정인 미드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는 영국 BBC에서 방영한 같은 이름의 드라마를 미국 ABC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다.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강력계 형사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했다 눈을 떠 보니 1973년으로 돌아가 있는 것. 자신이 과거로 보내진 이유를 찾으며 당시의 범죄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기둥 줄거리다.

원작과 리메이크를 비교해 보면 맨체스터와 뉴욕이라는 배경 변수 외에 전체 흐름은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드라마 작법의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라이프 온 마스’를 둘러싼 영국판(원작)과 미국판(리메이크)의 가장 큰 차이는 ‘속도감’이다. 첫 회 시작 부분에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장면을 보자. 영드의 경우 3분가량 이어지는 이 장면에서 컷은 30개 정도. 미드는 110컷이 넘는다. 여러 각도와 앵글의 화면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미드에 비해 영드는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한다.

사건 전개의 구성도 다르다. 미드는 시청자에게 친절할 정도로 대사 속에 많은 설명을 넣는다. 하지만 영드는 대사로 설명하기보다 상황 속에서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만화로 치면, 미국판은 글자가 빽빽한 말풍선이 장면마다 한가득이다. 영국판은 대체로 여백을 둔 채 인물 표정이나 설정으로 표현하는 만화에 가깝다.

인물 관계나 성격 묘사도 차이를 보인다. 영국 ‘라이프 온 마스’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비현실적인 환경에 고뇌하는 내면 묘사에 충실하다. 조연들도 선악 구분이 모호하고 복잡한 성격을 보여준다. 미국판은 인물 성격이 단순하고 명쾌하다. 미래로 돌아갈 고민을 하다가도 레코드점에서 (미래에는 고가인) LP판을 어떻게 가져갈까 농담한다. 영드가 훨씬 남녀차별이나 비합리적 수사 등 과거를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당시에 대한 존중이 살아 있는 것도 특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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