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총체적 위기’ 언제까지…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5분


정연주사장 거취 놓고 ‘친정-반정’ 극한 대립

올 1분기 200억 적자 등 재정위기까지 덮쳐

국가기간방송인 KBS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정연주 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최고의결기구인 KBS 이사회를 비롯해 노동조합, 직능별 단체, 보도본부 등이 모두 내홍에 시달리면서 사분오열되고 있다.

사내에서는 ‘친(親)정연주-반(反)정연주’로 갈리면서 공식 조직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고 구성원 간 불신도 심해지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적자가 200여억 원에 달하는 등 재정 문제도 심각하다. 경영진은 지난달 30일 이사회 보고에서 올해 적자를 50억 원 선에서 막겠다고 했지만 최근 광고 사정이나 프로그램 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 관계자는 “정 사장이 자신의 거취 때문에 내부 분열이나 경영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조만간 해결되지 않는다면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내부 갈등=이사회는 지난달 25일 6시간 넘게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엔 ‘2007 경영평가보고서’의 방송문안을 놓고 이사들끼리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방송문안에 “경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는 대목을 추가하면서 ‘경영’ 뒤에 ‘책임’이란 단어를 넣는 것을 친정 측 이사들이 반발했기 때문. 친정 측 이사들의 추천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 위원들도 방송문안 수정 자체에 반대했다. 정 사장에게 부실경영 ‘책임’을 묻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이사회는 11명 중 구 여권 추천 이사와 현 여권 추천 이사의 비율이 8 대 3이었으나 구 여권 추천 이사 2명이 그만두면서 팽팽한 구도로 변했다. 지난 정권에서 정 사장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이사회가 최근에는 견제 세력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이사회는 5일 ‘뉴스9’에서 이사회를 견제하는 기사를 두 차례나 내보낸 것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어서 이사들 간의 공방이 또다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논문 표절 의혹을 빚었던 신태섭 이사의 거취 문제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도 내부 갈등=노조는 4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섰다. 노조가 지난달 16일까지 실시한 퇴진 요구 서명운동에는 70%가 넘는 조합원이 참여했다. 노조는 지난달 21일 김금수 전 이사장이 이사회에 사표를 냈을 때에는 ‘정작 물러나야 할 사람은 정 사장’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의 정 사장 사퇴 노선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부산과 경남도지부는 정 사장 퇴진 서명 참여를 거부했고 충북도지부도 지부장의 태업으로 사실상 서명운동이 진행되지 못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KBS노조가 ‘언론노조의 회계부정 사건이 투명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7월부터 회비 납부를 거부해 온 것을 이유로 3일 징계를 할 방침이다. 이는 KBS노조의 사장 퇴진 운동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분석이다.

▽보도본부에서도 논란=‘뉴스9’가 15일 내보낸 ‘KBS 이사 정권 교체 후 사퇴 압력’이라는 기사가 김현석(미디어 포커스 진행자) 기자협회 KBS지회장이 보도본부장에 직보해 급하게 실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보도본부 내부에선 “정상적인 체계를 거치지 않은 기사가 어떻게 나갈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태가 돌발적 사안이 아니라 보도본부 내 일부 기자들의 ‘사장 지키기’의 일환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7일 ‘뉴스9’에 ‘정 사장이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꿋꿋이 나가야 한다’는 학계 등 151인 성명을 내보낸 것에 대해서도 공영방송으로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중견 기자들은 이 같은 사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BS, 더는 상처 받지 않아야=이런 상황에서 정 사장은 임기를 지켜야 한다는 원론만 내세운 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KBS 내분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사장은 최근 대외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 최근 KBS 노보에 따르면 지난달만 해도 제18회 국제방송·음향·조명기기전(KOBA) 개막식, 경북 문경 세트장과 울릉도 방문 등 예정된 일정을 취소했다.

한 방송학자는 “정 사장이 KBS를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는 진지(陣地) 개념으로 파악해 사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지금은 자리나 이념에 연연하지 말고 내부의 갈등을 치유하고 KBS가 더는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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