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이집트 경찰악단, 이스라엘서 사랑을 연주하다

  • 입력 2008년 3월 11일 02시 54분


밴드 비지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경찰 악단이 연주 초청을 받고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변변찮은 연주 실적 때문에 해체 위기를 맞은 악단으로서는 중요한 기회. 하필 이런 때에 막내 단원 할레드의 영어 발음 때문에 악단은 ‘벳 하티크바’라는 황량한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버스 시간은 지났고 돈도 없어 곤경에 처한 8명의 단원은 식당 여주인 다나의 도움으로 삼삼오오 나누어 마을 주민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이스라엘 영화 ‘밴드 비지트’는 이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았다.

투픽은 단원들에게 엄격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단장이지만 호의를 베풀어준 다나가 제안하는 심야 데이트를 거절하지 못한다. 아랍 가수 움 쿨톰의 노래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두 사람은 가족으로 인한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부단장 시몬은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집주인 가족들과 미국의 재즈 가수 쳇 베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그는 독선적인 단장에게 가려 외부에 내놓지 못했던 자신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려준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국경을 맞대고 가까이 있지만 30년 전에 전쟁을 벌인 사이다. 뭔가 극적인 스토리가 나올 법도 했지만 영화는 정치적 갈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과 사랑이라는 소재로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별다른 기교 없이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던져주는 잔잔한 웃음과 귀에 익지 않은 구슬픈 아랍 음악의 음계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숙한 관조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출신 감독과 배우가 이집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독특한 이 영화는 제60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제20회 도쿄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등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에란 콜리린 감독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유년시절에 이집트와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이집트의 TV 드라마를 보며 달랬다”고 말했다. 영화의 부제는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이다. 13일 개봉. 12세 이상.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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