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억원 쏟아부은 황실속…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지…”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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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중국의 장이머우(張藝謀·56·사진) 감독, 만나자마자 “서울이 이전됐다는 소식에 한국에 도착해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래요”라며 기자에게 우스갯소리를 던졌으나 저음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농담도 진담같이 느껴졌다.》

그는 25일 국내에서 개봉되는 영화 ‘황후화(花)’의 홍보차 내한했다. ‘영웅’(2003년), ‘연인’(2005년)에 이은 무협 액션작이자 4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화제작.

“그만큼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화려했던 과거 중국 봉건문화가 얼마나 허위적인지를 알리고 싶었어요.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것은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의 허울이랍니다.”

중국의 대표 무대극 ‘뇌우(雷雨)’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당나라 말기 중양절(9월 9일)을 앞두고 이틀간 황실에서 일어난 가족 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3억 원어치 이상의 국화꽃 비용과 1000여 명의 군인 엑스트라 등 엄청난 규모에 관객은 압도당한다. “최근 너무 대작 위주로 흐른다” “다소 비현실적이다”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라고 털어놓았다.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중국 영화계는 할리우드 영화에 침식당해 좌초할 지경에 놓여 있죠. 중국 관객들은 국내 영화는 스케일이 작다며 DVD로 보려 하죠.”

“평론가들의 비난이 두렵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엄숙한 그들이 중국 영화계를 살릴 순 없지 않나”라며 “젊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무협이나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얼마든지 진지하게 인생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황후 역을 맡은 여배우 궁리(鞏리) 때문이다. 1988년 ‘붉은 수수밭’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콤비처럼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고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결별하고 각자의 길을 가던 중 11년 만에 만난 것.

“궁리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연기가 더 성숙해졌어요. 내가 오랜만에 그녀를 찾은 건 그녀가 황후의 내면연기를 가장 잘 소화해 낼 것 같았기 때문이죠. 나이 더 먹은 것 빼곤 다른 게 없더라고요. 우린 아주 익숙한 협력자 관계예요.”

‘붉은 수수밭’ ‘홍등’ ‘인생’ 등의 작품을 통해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인정받은 장 감독. 그에게 노후 계획을 묻자 껄껄거리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영화 찍어야죠….”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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